안녕하세요.... 영화 시코 자막을 보다가 영어를 다 번역해서 만드신 분의 영어 실력에 너무 감탄해서 초면임에도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님처럼 영어를 잘 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요...Τ ̄; 외국에서 생활하셔서 그렇게 영어를 잘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영단어 33000 같은 걸 전부 암기 하셔서 그런 건지요...??; 저는 토익은 800-900정도 나오는데 실제로 외국인과 일상적/전문적인 대화를 하거나, 드라마 프렌즈, 혹은 영화를 시청하면서 이해하는 것은 시험문제 푸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서요...;;; 영화 시코 한글 자막 보면서 들어도 거의 하나도 안 들립니다;;; 결국 외국에서 살다와야 하는 것인지요...?;; 만일 외국에 나가야 한다면 최소 몇개월 동안 생활해야 님처럼 좋은 영어 실력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Τ ̄;;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때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대학에서 토론할 정도의 실력이 되려면 어떻게 준비하는 게 좋은지도 궁금합니다... 영화 시코 보다가 님의 실력에 깜짝 놀라서 염치불구하고 가르침을 부탁드리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한 건 스크립트 번역입니다. 영어 문장을 번역한 거예요. -_- ;;;;; 번역에는 청해(듣기로만 번역하기)와 스크립트 번역이 있는데 저는 청해는 전혀 못하고요 (이런 분들이 진짜배기이므로 실력향상이 필요하시다면 이런 굇수분들을 찾으셔야...) 다만 스크립트 가지고 우리말 표현에 적당하게 바꾸는 잔재주만 좀 부린 것이 영어 엄청나게 잘 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만들고 말았군요.
이하 근거 없는 개인 소견을 좀 적고 싶습니다. 불쾌하시다면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토익 성적표도 없고 국제선 타 본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냐, 혹은 영어를 잘 할 환경에서 살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번역이라는 건 외국말도 잘 알아야 하지만 우리말도 잘 알아야 되는 일이라는 거, 그리고 대학교에서 토론하기 위한 영어나 대화를 하기 위한 영어라면 양적인 실력보다는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거. 제가 <앓던이> 번역을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이것이 오역이냐 아니냐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상황에 적절한 표현인가. 충청도 사투리는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오히려 그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더 고심했었습니다. 어차피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 아닌 이상 번역 결과상의 차이나 번역하는 사람의 관점 차이는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내 영어도 짧으니 오역 날 때 나더라도 우리식 표현에 충실하게 번역하자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토론이나 일상회화는 단어와 숙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혹은 제시)과 대답(혹은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전공과목 토론이라면 단어 몇 자, 표현 몇 줄 틀리는 건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토론장에서 어떤 용어(혹은 개념)들이 어떤 어감(혹은 관점)으로 사용되는가, 나는 얼마나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또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진짜로 걱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열심히 하면 되고, 들어야 하는 최소한의 내용을 성의 있게 들어주려고 노력하면 됐지, 거기에 3300개의 어휘집이 필요할 거러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함부로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 ̄○님은 그냥 막연히 외국에 나가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토익 공부하고 단어장 외워도 도저히 말문이 안 터지는데 이 참에 한국을 떠나 보면 좀 나을까, 하고 막연히 꿈꾸시는 것 같습니다. 국제선 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건방지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우리말, 아니 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 할 때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등등의 고민. 즉 말하기와 듣기라는 것은 언어를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 것입니다. 외국어로 많이 말해 보고, 외국어를 많이 들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최적의 환경이 외국인 것도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모국어로 경청하지 못하고 발언하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 말을 배워서 유창하게 리스닝을 하고 스피킹을 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요? 제가 뵈도 너무 길게 썼습니다. 놀라진 않으셨는지.... 결론은, 저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만 말을 하고 듣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 ̄○님이 원하시는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 적은 소견은 근거도 없고 개인적입니다만 제깐에는 소신껏 쓴 것이므로, 좋은 뜻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아들이 고3 되면서 누군가의 요청으로 미개봉 미국영화를 번역하여 사이트에 무료 배포하였더니 그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본 사람이 너무 잘한 번역에 대해 조언 구함에 대한 답글입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테크노마트 영화관에 가는 길에 가판대에서 시코를 보고 틀어달라했더니 우리 아이가 번역한 것이 CD로 만들어져 팔리고 있었다.
몇달이 지나서 영화관에서 개봉하였는데 그때의 자막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