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그는 갈매기다. 수천 수만 마리의 엄청난 갈매기들 중의 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가 다른 갈매기들과 다를 바가 뭔가. 그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다르다. 매일같이 좀더 새로운 비행술과 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자 애쓴다. 다른 갈매기들에게있어 '난다'라는 것은 그저 하나의 생존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도 조나단 그는 아주 특별한 갈매기인 것이다.
모든 갈매기가 그를 비웃는다. 심지어는 엄마 아빠조차도. 그들은 먹이를 먹기 위한 비행만을 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결국 그 잔소리도 그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왜 그래야 했을까. 아마도 조나단 스스로 그것, 하늘을 난다는 것에 상당한 기쁨과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특별한, 수천 수만마리 중에서 겨우 한 마리 있는 정도로 특별한 갈매기인 것이다.
그는 나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무리에서 추방당하고, 저 멀리 외딴 곳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다. 얼마나 비참하고 또 얼마나 외로웠으며 또한 얼마나 서글펐을까. 쫓겨났기 때문에 비참하고 혼자 살아야 했으므로 외로웠으며 다른 갈매기들, 적어도 한 두 마리 정도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서글펐다. 그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른 주위의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해내는 정말로 특별한 갈매기다. 그러던 중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비행술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며 그를 하늘나라로, 다시 또다른 세계로 이끌고 간 두 마리 갈매기들에 매우 놀란다. 그 또다른 세계에는 배우는 것에 대한, 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갈매기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는 뜻 있는, 배우고 싶어하는 갈매기들의 일원인, 특출한 갈매기인 것이다.
그러던 중 치앙이라는 노인장 갈매기를 만난다. 그는 완전함에 대한 개념을 조나단에게 심어준다. 그리고 순간이동 비행술의 원리까지도, 그리고 그는 치앙의 마지막 모습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지켜본다. 그리고, 설리반이라는 동료 갈매기의 말에 힘을 얻어 새로운 비행술에 매력을 느끼고 배우고 싶어하는 수많은 인재 갈매기들을 데리러 온다. 이 구절에서 저 유명한 명언이 나온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이제 조나단도 어느 정도 생도들을 모은다. 그리고 다시 무리로 돌아가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말하지면 '배움의 전도'랄까. 그들의 멋진 모습에 하나 둘씩 배움의 무리에 끼어들고 싶어하고... 어떤 갈매기는 정말 들어오기까지 한다. 그는 나는 일에 흥미없던 갈매기들조차도 단지 먹이만을 위해 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배우고 싶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제 조나단도 갈 때가 되었다. 위대한 갈매기의 아들이라고 추앙받던 그 갈매기가 갈 때가 된 것이다.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생도들은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마치 치앙이 사라질 때처럼. 아마 조나단도 치앙이 간 곳에 갈 것이다. 조나단은 마지막으로 플레처 린드라는 우수한 갈매기에게 계속해서 다른 갈매기들을 가르치라고 당부하고 마침내는 없어진다. 아니,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제 플레처 린드가 조나단의 가르침의 바통을 넘겨받고 날기 시작한다. 끝없는 배움의 비행을.....
'진정한 갈매기는 끝없이 자유로운 갈매기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그리고 또 아직 씌어지지 않은 숫자가 한계를 갖지 않듯 그의 본질은 무한히 완전한 것이며'등등 수많은 철학적인 언어로 씌어진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그는 이 책에서 진정한 삶의 목적은 먹는 일이나 살기 위해서만 나는 일 따위는 아닌, 배우는 일, 발견하는 일, 그리고 자유로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조나단, 플레처 린드, 설리반, 치앙, 그외 수많은 배우고 싶어했던 갈매기들을 빌어 말해 주고 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의 진정한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책은 그렇게 갈매기들, 그 중 너무나도 특별한 갈매기 조나단을 통해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 먹이만을 위해 날 수는 없는 것이며,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보는 것이다. 그는 수천년 동안 생계 유지를 위해서만 날았던 갈매기의 한 무리에 속하는 새가 아닌, '그의 본질은 완전히 무한'하며 '끝없이 자유로운' 특별한 갈매기였던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숙제로 썼던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