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재회

순례 2018. 3. 17. 11:30

뜻밖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녀를 만난건

초등학교 친구 딸내미 결혼식장에 갔다가 부페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온지도 오래되었고 학교다닐 때도 별로 두드러진 것 없이 조용히 지내다보니 내가 아는 친구도 나를 아는 친구도 많지 않았다
그럴진대 여학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저만치 떨어진 여학생(지금은 중년의 여인)이 나를 아는체 하였다
"친구가 ○○○?"
"어, 그래"
얼결에 악수하며 인사 나누는데
"나 기억할지 모르겠는데ㅡ 장난편지" 한다
그제야 퍼뜩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명함을 건넸다
그랬더니 그녀도 명함을 주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전화번호를 저장하였다
번호를 저장하니 카톡이 떴다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 카톡을 열었다
우선 시화전 앞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일까?
나두 초딩 때는 학교 대표로 나가 글짓기 대상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데 광주 산다고 한 것 같은데 사진 속은 하남이다
그리고 그 안의 다른 사진들도 차례로 훓어보았다

중3 무렵 어느 날 □□를 통해 전달받은 편지에 얼마나 가슴이 셀레었는지 모른다
아마 두 세번 편지가 오간 걸로 기억한다
첫사랑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한 때 날 설레게 했던 여학생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는 만나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한동안 까맣게 잊었던 그녀를 드디어 38년 만에 만난 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아는체 하지 않았다면 모른척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무튼 사진 속의 그녀는 좋아보였다
아이들도 잘 키운 것 같고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녀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고 얼굴도 □□네 놀러왔을 때 먼발치로 두어번 보긴 했지만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장난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래서 언제 한 번 만나 차나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만남에 대한 답변은 없고 다른 이야기만 짧게 몇 번 오갔다
그리고 여러날 지나서 주말에 시간 되는지 물어왔다
너무 반가웠지만 선약이 있어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다음 주를 보니 그때도 스케줄이 있어 일요일 오후 물으니 다행히 된다고 하여 몇 번 시간과 장소 협의 끝에 만나기로 하였다

1시간 반가량 전철타고 만나러 가면서 한편으론 설레면서 한편으론 은근 걱정도 앞섰다
사실 그녀를 언젠가 한 번은 만나고 싶단 생각을 해 왔으면서 기억도 희미하고 막상 만나더라도 아는게 별로 없어 어색하지 않을까해서다

그런데 막상 약속 장소에 도착해 그녀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먼저 날 알아보고 반긴다
근처 커피숍마다 자리가 꽉 차 겨우 일어서는 팀 기다렸다 자리를 잡았다
막상 만나긴 했는데 역시 어색하긴하다
아마 그녀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잠깐 학생 때 얘기하며 수줍은 미소를 짓더니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들 친구 얘기들 줄줄이다

내 마음속의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기대나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나의 삶이 평범에서 벗어서 좀 굴곡진 삶을 살았는데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굴곡진 삶을 산 것 같다
함께 저녁까지 먹으며 좀 더 오랜시간 얘기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 해서 아쉽지만 헤어졌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내 생각이 나서 전화 한다는 그녀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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