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남한산성에 올랐다
산에 올라와 땀 흘리고 잠시 의자에 앉아있노라니 몇 주 전에 우연히 만난 어떤 여인이 생각난다
마누라는 전 날 손주 봐준다고 큰 딸 집에 가서 다음 날이나 돼야 온단다
하긴 함께 있는다고 별반 달라질 건 없지만 적어도 모든 의식주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아무튼 오후에 동에서 열리는 체육대회 줄다리기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많다보니 산이나 한바퀴 후딱 돌고 와서 할 요량으로 달랑 스틱 한짝만 들고 나왔다
산을 오른지 얼마 되지않아 어느 여인이 혼자 배낭메고 가기에 말을 붙였다
혼자 다니는 여인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말을 걸기는 처음이었는데 나 스스로도 내가 이상히 여겨졌다
왠지 인상도 좋아보이고 무엇인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먹을 것 많이 싸왔나본데 먹을사람 없으면 같이 먹어주겠다고 하자 나를 돌아보고는 그러라고 답한다
그렇게 그녀와 동행했다
원래 여섯명이 함께 하기로 했는데 세명은 미리 연락이 왔는데 두명이 연락이 안돼 할 수 없이 천천히 올라가며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 못한다
성남쪽은 초행이라니 자연스럽게 내가 길 안내자가 되었다
성문으로 들어가 성벽쪽으로 길을 잡자 지난번에 성벽 한바퀴 돌았다고 다른길을 원해서 다른 길을 택해 숲을 지나왔다
그리고 다시 성벽을 만났는데 암문에서 밖으로 나가 외곽길을 택했다
다행히 처음 가는 길이라 좋아했고 처음보다 기분도 나아보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돌아 암문을 통해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잠시 앉았다
걸을땐 별반 얘기를 많이 못했으나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 볼 때부터 여느 여인과 다른 느낌의 그녀 이야기를 듣다보니 꼭 스승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내가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평생 공기업에 몸담고 있다가 몇 년전 은퇴를 했다
그래서인지 내 삶은 참으로 단조로웠다
담배도 안피고 술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술은 할줄 알아야겠기에 뒤늦게 배웠다
그리고 전에 친구들이 애인자랑하면 미친놈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애인 있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를 애인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분명 처음 본 여인이고 잠시 함께 했을 뿐인데 자꾸 끌린다
내가 무슨말을 하면 답변 하면서 밴드 글을 찾아 보여준다
그런데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하자 사실 글 쓰는 사람이라 했다
조금 더 걷다가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였다
알타리 김치를 먹는데 내 입맞에 딱 맞다
순간 이런 여자와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다
그런데 막상 얘길 들어보니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자꾸나서 애인 얘기를 했더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며 몇가지 글을 보여준다
내가 그녀에 대해 별로 아는건 없지만 그래도 다른 남자 이야길 듣는데 강한 질투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얼마나 깊은 사이길래 그러는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얼굴 한 번 본적도 없고 밴드에서 알게 되었다는데 그럴 수도 있는가싶다
오십은 족히 돼 보이는데 글 쓰는 사람이라 순수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그 남자룰 사랑하는건지 내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그러는건지 모르지만 헤어진지 얼마 안되어 다른사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에 줄다리기 있다면서 안가도 되냐고 은근 밀어낸다
하지만 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제 볼지도 모를 사람 오늘 하루라도 그녀 옆에 있고 싶었다
그녀는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등산밴드에 들어오라며 잠시 내 핸드폰을 검색하더니 밴드 들어오려면 어플부터 깔아야 된다고 했다
사실 난 카톡이나 주고 받는 게 전부라서 컴퓨터에 능수능란한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밴드가 뭔지 잘 몰라 답답하기도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향을 틀어 조금 더 가다가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는 안 볼 사이여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참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해맑은 웃음과 순수한 마음 넉넉한 생각이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게 한다
다시 일어나 방향을 틀어 주차장을 지나 비교적 완만한 숲길을 택했다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오늘 처음 본 여인이고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음에도ㅡ
아까와는 달리 사람도 적고 한적한 길이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처음엔 살짝 뺐지만 그대로 잡혔다
손도 마음만큼이나 곱고 따뜻하다
내 가슴은 쉴 새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몇 번이나 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며 참고 있는데 숲속 의자에 잠시 앉아 쉬면서도 헤어진 남자 얘기를 한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요동치는데ㅡ
사르륵 사르륵 비처럼 떨어지는 나뭇잎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 하는 듯하다
다시 길따라 거의 다 내려왔을즈음 등산화를 처음 신었다는 그녀가 다리가 시큰거린다해서 시간도 끌겸 다리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시내까지 왔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 술 한잔 하고 가자했다
함께 술 마시며 얘기하고 챙겨주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가는 시간이 못내 아쉽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두워진지 오래다
가야하고 보내야 하지만 너무 아쉽다
그래서 집가서 차한잔 하고 가랬더니 끝내 거절하고 돌아갔다
그녀가 가고 난 빈자리 그냥 잠들지 못해 양주 한 잔 마셨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살면서 분명 그녀보다 더 나은 여인을 만날 자신은 없다
하지만 평생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삶을 살아온 그녀와 애인이 된다면 나 역시 그녀를 내 방식에 강요할지도 모를 일이고 무엇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만난다면 나만의 그녀가 될 수 없기에 일단 밴드는 안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야 좋지만 그녀 입장에선 사랑할 준비도 안되고 나이도 많은 내가 애인 하자면 내 욕심이겠지
그리고 한번쯤 영화같은 사랑을 해본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져 여행하는ㅡ
지금까지도 수시로 다녔던 산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산에 올 때마다 그녀가 생각 날 것이다
혹시 다음에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내 욕심일지라도 그녀를 잡아둘 심산이다
꼭 애인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맘 편히 속내 털어놓고 들어줄 수 있는 친구라도 족하다
기분좋은 바람이 분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웃는 모습이 예쁜 그녀를 생각하며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역사 깊은 남한산성은 나에게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