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그해 여름

순례 2013. 11. 8. 13:02

우리 가족을 소개한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서 도청에 근무하시고 엄만 전업주부로서 내무부장관 역할을 훌륭히 해내신다.

그리고 큰언니 유옥은 서울 S대학을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C시의 C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시다.

둘째언니 유순은 H대 신방과 4학년 재학 중인데 유능한 신문기자가 꿈이란다.

셋째언니 유라는 역시 H대 사학과 1년생으로 사학자가 꿈이다.

그리고 넷째인 난 유미로서 C여고 1학년으로 무한한 꿈을 갖고 있는 깜찍한 여고생이다.

꼭 꼬집어 말을 한다면 난 소설가가 되거나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언니들이 다니는 국립대학인 H대 국어과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동생 영철인 부근의 M초등학교 3학년으로서 장차 목사님이 될 꿈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죠디가 있다. 죠디는 내가 가장 아끼는 개 이름이다. 작년 여름 완도에 있는 큰집에 놀러 갔다가 큰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았는데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상으로 대충 가족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때는 7월. 여름의 뜨거운 열기도 있지만 아침공기는 그런 대로 싱싱한 맛이 스며드는 그런 때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가족들 모두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큰언닌 엄마와 함께 아침준비하고 두 언니들은 집안청소 아버진 정원손질 영철과 난 대문 밖을 쓸었다.

난 대충 끝내놓고 죠디와 함께 강가로 갔다.

뒤돌아보면 새파란 잔디언덕이 넓디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에 2층의 아담한 우리 집이 보이고 앞을 보면 시퍼러면서도 맑디맑은 강물 건너 저 너머로 높다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이 다 한눈에 보이는 그런 바위에 앉아 첨벙거리며 발장구를 치곤한다.

그러다 찬물에 세수하고 누가 먼저가나 내기하면 항상 지는 건 내 쪽이다. 그럴 때마다 군밤을 맞는 건 죠디였고 어느 날 인가부터는 헐떡거리며 먼저 뛰어가선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 뒤에 어슬렁거리며 따라 들어온다.

그러면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밥부터 찾는 게 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고 나면 부산하기 이를 데 없다.

네 딸의 수선과 영철의 소리 게다가 죠디까지 소란스럽기 짝이없다.

이럴 때 제일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이 엄마다.

여기저기 도시락 집어주랴 용돈 내주랴 인사 받으랴...

더구나 그 날은 신나는 여름방학 시작날인 것이다.

물론 대학생 언니들이야 벌써 했지만 그날 둘째언닌 졸업여행 문제로 나서는 길이고 셋째언닌 동아리 모임이 있다며 같이 집을 나섰다.

아버지와 영철인 좀 늦게 나서도 되겠지만 꼭 우리랑 함께 나섰다.

간신히 등교준비 출근준비가 다 되자 엄마가 대문에서 배웅해주셨고 죠딘 엄마 곁에서 우리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내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여섯 명이 길을 나서면 길이 꽉 찼다.

그럼 언제나 둘 둘이 짝이었다. 큰언니와 아버지가 맨 뒤였고 대학생 언니들이 가운데, 나와 동생이 앞장섰다.

그렇게 얼마쯤 걷다가 영철이가 떨어져 나가면 난 언니들 틈에 꼽사리 끼었다.

그렇게 조금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왔고 우리 다섯은 같은 버스에 올라탄다.

시내로 접어들면 먼저 아버지가 내리신다. 그 때마다 극성스런 네 딸의 인사를 받으시며.

다음 정류장에서 학생 셋이 내린다. 남은 큰언니에게 셋이 인사하고 내리면 난 곧바로 학교로 들어가고 언니들은 길 건너서 J시 가는 방향으로 버스를 갈아탄다.

큰 언닌 우리 내린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늘 반복되던 아침 등굣길. 이젠 한동안 이런 맛도 없겠지. 이제부터 방학이니까.

 

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

벌써부터 무료하고 답답하기 시작했다.

엄만 여전히 가정에 충실하셨고 아버지 역시 언제나 출퇴근 하셨다.

큰언닌 S고 영어교사인 약혼자 예비형부와 시골에 계신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러 떠낫고 둘째언닌 졸업여행중이고 셋째언닌 동아리 MT준비 중이고 영철인 동네로 강가로 왕복하며 친구들과 열심이었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은 역시 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방학하는 날 2층 내 방에서 오후 내내 계획에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건만.

이번에 명작을 모조리 읽어야지, 그림도 다섯 장 정도는 그리고, 해수욕장에 가서 멋지게 수영도 해야지. 그리고 동생이랑 하이킹도 하고 뒤떨어진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과제물도 미리미리 다 해두어야지.

그러나 막상 방학이 되고 보니 할 일은 많은데 날씨가 더워 감히 엄두도 못내는 지경이다.

아침만 먹고 나면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책상 앞에 앉으면 바라보이는 먼 경치 속에 온갖 공상들만 떠다니고 그러다간 깜빡깜빡 졸기 일쑤다.

그렇게 보내기를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나버렸다.

아휴, 억울하고 속상해. 시간은 왜 이다지도 빨리 가는지. 날씨는 또 왜 그리 무더운지.

방문을 열어놓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강바람이 제법 시원하지만 그것도 바람이 불 때 얘기고 안 불면 후텁지근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이러다간 어영부영 방학 다 가버리겠네. 기왕에 숙제도 못하고 계획도 실천 못하는 데 여행이나 갔다 올까?

그래 그것 참 멋진 생각이군. 여행이라? 기차여행이 좋을 거야.

멀리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들이마시면서 멋진 상상을 하고 활짝 가슴을 넓혀보는 거야.

그런데 어디가 좋을까? 먼 여행하려면 완도에 있는 큰집이 좋겠군. 아참! 큰집 언니가 제주산다고 그랬지?

큰집엔 가봤으니 언니네 집에 다녀올까.

야아 신나라. 푸른 바다에 떠서 항해하고 아마 내 마음도 바다처럼 넓어질 거야 분명히.

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갔다 와야지.

난 흥분해서 아래층으로 쿵쾅거리며 뛰어내려왔다. 내려와선 흠칫 놀라 멈춰서고 말았다.

아버진 아직 퇴근을 안 하셨지. 그런 생각에 잠시 서있자 거실에 앉았던 엄마가 무슨 일이야고 물어왔다.

난 대답대신 밖으로 나와 마냥 아버지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저녁에 부모님께 나의 계획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기다리자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아버지께서 어이가 없으셨던지 너털웃음을 웃으시곤 나이가 어려 안 된다는 얘기였다.

나이가 어리다니 내 나이가 열 살하고도 일곱이나 되는데 어리다구?

옛날 같았으면 시집도 갔을 나이구만 어리다구?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주를 가려면 배를 타던지 비행기를 타던지 해야 하는데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였다.

아으 아깝다. 한 살만 더 먹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만 내년에 가라셨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가 다시 웃으며 덧붙였다. 단 가족 중에 나랑 동행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거였다.

보나마나 큰언닌 안 되고 둘째언니도...도 안 되고 셋째언닌...?

아버지께 매달려 보았다.

“어떻게 안 되겠어요?”

“글쎄다. 휴가가 나야지”

셋째 언니 방으로 갔다.

“언니!”

“안 돼 얘. 우리 MT가야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

어쩌나. 평소엔 그렇게도 가족이 많은 것 같았는데... 속상했다.

그럴 즈음 여행 갔던 둘째언니가 돌아왔다.

“언니!”

“뭐? 넌 왜 그리 철딱서니가 없니? 그렇잖아도 졸업이라 바빠 죽겠는데. 지금 여행 갔다 와서 무지 피곤해. 꼼짝하기 싫어. 그리구 이젠 자료 수집하고 논문 준비해야 되거든. 겨울방학 때 데려다줄게”

칫. 그때 가선 또 그러겠지.

‘아휴, 속상해 얘, 말 시키지 마. 그렇잖아도 면접 떨어져서 속상해 죽겠는데 너마저 속 뒤집어 놓을래?’

보나마나 뻔하지 뭐!

아아, 어쩌란 말이냐. 그냥 이대로 무의미하게 이 여름을 보내야 하나.

그즈음 큰언닌 잠깐 틈내 시골에 다녀온 후 학교에 계속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셋째언니에게 갔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그런데 7월 31일이었다.

학교 간다며 갔던 셋째언니가 어쩐 일인지 풀이 죽어서 돌아왔다. 그리곤 날더러 아직 여행 동반자를 구하지 못했냐며 자신이 동행해 주면 어떠냐고 했다.

그 말에 얏호! 소리 지르며 언닐 덥석 끌어안았다.

그날 밤 가족들 앞에서의 언니 발표는 이러했다.

MT가는 계획을 수정하여 10월에 농어촌 봉사활동으로 벼 베기에 동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울러 여행을 못 가 안달하는 동생에게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단다.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쇠뿔도 단숨에 빼랬다고 부랴부랴 서둘러 그날 밤 야간열차로 길을 떠났다.

 

우리가 목포에 도착하니 여름인데도 새벽이라 싸늘한 감촉이 팔에 감돌았다.

시간이 그러니까 6시도 안된 이른 아침이었다.

우린 우선 남들처럼 총총걸음으로 부둣가 터미널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우리보다 앞서 온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결코 새벽 기차 손님만으로 구성되진 않을성싶은 많은 인파는 전날 폭풍주의보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못한 까닭에 발이 묶여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줄을 서서 겨우 승선표를 끊은 것이 11시쯤 있던 연락선에 불과했다.

그래도 집을 나설 땐 카페리 호라도 타고 갔던 얘기를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해주려던 참이었는데...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나마 잡지 못하면 오후 5시로 넘어가게 되었다.

언니와 난 울며 겨자 먹기로 연락선에 승선하였다.

초과 인원이 될 만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틈에 불쾌감도 감내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그 기분도 잠시뿐 내 가슴은 설레임으로 흥분하고 있었다.

배가 출항하기 전 유달산에 올라 멀리 잔 점처럼 박혀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적잖이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배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동안 언닌 맨 아래층에 자릴 잡고 앉아 있었다.

거기엔 이미 투전판을 벌인 남정네들이 있는가하면 우는 아기 달래는 아줌마들, 살기 위해 함지박과 마주하고 있는 아낙들이 침침한 가운데 드러나자 왠지 그 모습이 역겨웠다.

그런데도 언닌 잘 참아내고 있었다.

난 그런 언니 옆에 바짝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적어도 이건 내가 생각했던 여행이 아니었다.

그럴 즈음에 ‘뚜~우’하며 긴 고동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내 눈이 반짝 뜨이며 몸이 반사적으로 일으켜졌다.

“언니! 배가 출발하나봐! 나 올라가 있을게!”

그 소릴 뒤로 남기며 허리를 사다리에 바짝 밀착시키고 어렵게 갑판 위로 올라왔다.

정말이지 배는 몇 번 더 고동소리를 울리며 목포와 멀어지고 있었다.

앞을 보니 유달산이 점점 멀어가고 아랠 굽어보니 흰 물거품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했다.

방금 전의 그 칙칙한 객실 분위기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기분 좋게 바람을 들이마시며 바다를 굽어보았다.

얼마간 바람을 흠씬 들이키며 가던 난 바다만 바라보기도 다리 아프고 해서 다시금 그 어둡고 칙칙한 아래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언닌 그 어둡고 냄새나고 칙칙한 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누워있기도 지루해 다리가 아프더라도 다시 올라왔다.

그편이 훨씬 나았다.

바다는 꼭 커다란 호수 같았다.

숲과 숲에 가린 호수 같은 것이 앞이 꽉 막힐 것 같은데도 그 지점에 다다르면 뒤는 막히고 앞은 트이고 사방이 이리저리 섬들로 연결돼 하나의 육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를 몇 시간째 꼼짝도 않고 난간을 잡고 있던 터라 옆에서 뭐라고 하는지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 나 바다와 내가 하나인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귀 언저리에 무슨 말인가 자꾸만 부딪치는 것 같아 옆을 돌아보니 어떤 키 큰 사내가 날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척이나 재미있는 모양이지? 몇 번씩이나 물어도 대답이 없는 것이”

“…”

“하긴. 모든 인간은 무엇을 하든 한 가지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했거든”

“…”

“어디까지 가지?”

“…”

“어디까지 가느냐구.”

“네? 저보고 말씀하셨어요?”

“여기 학생 말고 또 누가 있나?”

“네에. 저 제주도에요”

“그래? 처음인가?”

“네”

“혼자서?”

“아니에요. 언니랑 같이 가요”

“거긴 뭐 하러 가는데?”

“언니네 집에요”

“언니가 많은 모양이로군.”

“같이 가는 언닌 친언니고 제주 사는 언닌 사촌언니에요”

처음만난 사내에게 왠지 거부감도 일지 않는데다 뭐라 말할 수 없이 빨려가고 있단 생각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건 그 사내였다.

“어때, 우리 통성명하지 않을래? 난 서진우라고 해”

“전 정유미라고 해요”

왠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어떤 힘이 내 내면으로부터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아까 언니네 집에 간다고 했지? 놀러가나?”

“네”

“유미는 좋겠군.”

“저어 뭐라고 불러야 하죠? 아저씨?”

“아저씨는~ 누구 혼사길 망칠 일 있나. 오빠라고 그래.”

“피이. 오빤 무슨 오빠에요?”

“왜?”

“난 아직 남에게 아니 태어나서 딱 한사람 말고는 아직 오빠소리 한 적이 없어요.”

“그게 누구지?”

“사촌오빠요”

“그럼 유미는 오빠가 없나?”

“네 그래요 그래서 아직 불러본 적이 없어요.”

“그것 참 잘 되었군. 나도 여동생이 없어 아직 오빠소리 못 들어봤는데”

“…”

“유미는 가족이 많은가?”

“네. 부모님과 언니 셋, 그리고 전 막내에요.”

“저런 아들 나으시려고 그랬나보군.”

그 말에 난 그저 피식 웃었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도 왠지 쑥스러워 말이 들어가 버렸다.

“거긴 어때요?”

“어허 거기라니? 오빠라니까. 나? 난 유미처럼 가족이 많지 않아. 부모님과 나 셋뿐이야”

“…”

“유미넨 참 재미있을 것 같아. 형제도 많고 하니까”

“네, 그래요. 딸이 넷이니까 얼마나 시끄러운지 몰라요. 그래도 말썽 일으키거나 하진 않아요. 다 모이면 집안이 떠들썩해요. 참, 아까 제가 막내라고 했던가요? 오랫동안 막내란 말이 입에 붙어서 아무 때나 막내소리가 나오네요. 실은 얼마 전부터 전 더 이상 막내가 아니에요. 제 동생 영철이가 있거든요. 그 앤 사실 고아인데 고아원이 싫어서 추운 겨울 고아원을 나왔대요. 추위에 떨고 있는 그 앨 마침 지나가던 우리교회 목사님이 데려오셨는데 아버지가 엄마와 의논해서 양자로 들였는데 애가 참 기특해요. 목사님이 저에게 베풀어준 호의가 무척 고마웠나 봐요. 저도 목사님 같이 훌륭한 목사님이 되고 싶대요. 아버지도 흡족해 하셨구요. 비록 딸이긴 해도 넷 중에 하난 목회를 하셨으면 바라셨거든요. 그런데 교사, 기자, 사학자, 소설가를 하겠다니 막을 도리가 없죠. 영철인 새 학년이 되면서 전학을 했고 지금은 매사에 무척 열심이에요. 착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귀염도 많이 받아요.”

“그래? 유미는 장래 소설가가 되고 싶나?”

“네”

“유미는 집이 어디지?”“C시에요”

“그런데 사촌언닌 먼데로 시집 가셨네?”

“아뇨, 멀지 않아요. 큰집은 완도거든요.”

“그래? 그런데 형제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지?”

“…”

“아버지와 큰아버지 말이야”

“아~ 아버지와 큰아버진 완도가 고향이세요. 큰아버진 거기서 쭈욱 사셨고 아버진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셔서 직장생활도 거기서 하셨죠. 그리고 결혼 후 수원으로 발령 나셔서 그리로 이사하셨구요. 우리 넷 모두 수원에서 나고 자랐죠. 그리고 내가 세 살 때 지금의 C시로 이사한거구요.”

“유미가 부럽군.”

“왜요?”

“부모형제 화목하고 형제간 우애돈독하고 또 건강하니까”

“어머! 그게 뭐 부러워요. 다 그럴 텐데.”

“그렇지 않아. 우린 세 식구인데도 다들 바쁘셔서 대화할 시간도 없어. 그리구… 아냐, 관두자.”

“…”

“참 유미는 몇 학년이지?”

“1학년인데요.”

“여중?”

“아니 절 뭐로 보고. 이렇게 큰 여중생도 있나요? 그리고 이건 뭐 폼으로 달고 다니는 줄 아세요? 높을 고자가 보이지도 않냐구요.”

날 여중생쯤으로 알고 있는 그에게 흥분하여 배지를 가리키며 따지듯 쏟아내었다.

“그랬군. 미안. 유미가 귀엽길래 여중생인줄 알았지.”

“그러는 아저씬 얼마나 되셨는데 귀엽다며 애 취급하는 거예요, 예비숙녀에게”

“나? 난 2학년밖에 안 돼.”

“어느 학교 무슨 과인데요?”

“무슨 과라니? 고등학교에도 과가 있었나?”

“그럼 대학생이 아니고 고등학교 2학년...? 맙소사”

“그렇게 됐어. 친구들은 지금 3학년이지. 지금쯤 학력고사 100일 작전이니 뭐니 한참 머리 싸매고 공부에 열중들 할 텐데…”

“난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줄 알았어요. 많아 보였고 처음부터 말을 놓았기 때문이죠.”

“난 그 반대였지. 귀엽고 순진하게 보인데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거든.”

“그건 그렇고 왜 1년 늦었어요?”

“고1때 몸이 좀 불편해서 휴학을 했거든. 난 앞으로 의대 들어가서 의사가 될 생각인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지.”

“왜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거예요.”

“…”

“집안 얘기 좀 해주세요. 내 얘기만 했잖아요.”

“난 유미처럼 할 얘기가 없어. 아버지는 의사라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시고 어머니도 일하시느라 언제나 바쁘시지. 난 아침에 학교가면 저녁에 돌아오고. 그게 다야.”

자신의 얘길 하면서 그렇게 우울해 보일 수가 없었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쩌면 흐를 듯 보이는 눈망울이 안 돼 보였다.

계속 수평선 저 너머를 주시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유미는 언니네 놀러가는 길이지만 나는 요양하러 아버지 친구 분 댁에 가는 길이야. 지금도 몸이 안 좋거든.”

그때였다. 멀찍이 섬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사람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가방과 메모지를 가지고 왔다.

“유미. 이건 내 주소야. 난 유미같은 사람을 좋아해. 꾸밈없고 순수하고 소박하고 게다가 명랑하고. 언젠가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겠지만 내 주소를 주고 싶어. 그리고 네 주소도 받고 싶은데 적어줄래?”

“전 글씨를 잘 못 쓰는데 그냥 쓰세요.”

“그래. 그럼 불러봐”

우리가 서로 주소교환을 할 즈음 또 한 번 ‘뚜~우’하는 고동소리가 울려왔다.

언제 나왔는지 언니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언니와 진우를 인사시켰다.

배가 어느 정도 섬과 가까이 가자 섬에서 작은 배가 마중 나와 서로 발판을 맞댄 가운데 바다 가운데서 사람들을 옮겨 태웠다.

허리가 잘록한 조금은 크다는 느낌을 주는 이 섬에서 진우는 내렸고 작은 배로 옮겨 타기 전 그와 악수로 이별을 고하였다.

그가 탄 배가 섬 쪽으로 미끄러져 가고 우리가 탄 배 역시 제주를 향했지만 진우가 탄 배가 한 점으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1981년 7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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