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일기&육아일기

진료, 예방접종

순례 2014. 8. 17. 19:24

111일 목요일 맑음

퇴원하는 날 받아온 이틀분의 약을 다 먹기 전 오늘 약 타러 병원엘 갔댔지.

기저귀, 우유가방을 들고 널 안고 힘들게 병원에 가서 진찰권을 쓰고 있는데 성배 아빠가 보였다.

그래서 아는 체 했더니 성배 엄마를 가리키는데 성배가 그의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내게 반가운 표정을 짓는데 너보다 하루 먼저 퇴원한 성배는 아파서 다시 입원해야겠다고 입원수속을 밟고 있었지.

진찰권을 받아 소아과로 가서 기다리고 있자니 성배네도 왔지.

넌 집 나설 때부터 자기 시작하더니 줄곧 눈 한번 떠보지 않고 잠만 자는 너완 달리 성밴 좀 괴로운 표정이더구나.

좀 안됐지 뭐니.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이상 없으니 찬바람 쐬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4일분 약을 지어 줄 테니 먹이라 하셨지.

이럴 땐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자고 보채던 너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비록 낮엔 잠만 자지만 저녁땐 제법 옹알이도 하고 한두 번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지.

 

 

내게 진정 이 시구처럼 간직하고픈 사람하나 있다.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왜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고 왜 조금 더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바보 같은 후회를 몇 번하곤 했다.

K!

어떤 의미에서의 첫사랑이랄 수도 있는 그였기에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할 수 있었고 또 누구보다도 오래 추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사랑이라도 해본 것이 내겐 오히려 위안일는지도 모른다.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했지만 남는 건 오직하나 사랑도 오직 하나 뿐.

아빨 만나고 사랑하며 살리라는 생각은 서너 달이 채 가기도 전에 다시 구멍 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어쩜 네 아빨 영원히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오직 하나이므로.

 

눈 내리는 밤에는 편지를 쓰고 싶다.

아득히 잊혀진 그리운 이름 하나 떠올리면서

흰 눈처럼 정갈한 마음을 띄우고 싶다.

솔직하고 따스한 편지를 쓰면서 잊었던 이름을

그립고도 소중하게 입 안에 굴리고 싶다.

쏟아지는 눈 발속에 묻혀지는 추억속의 이름 하나

소중하고 그리웁게 떠올리고 싶다.

 

눈 내리는 밤에는 혼자서 내리는 눈발을

머리에 이고 정결한 찻집에 들어가

그윽한 차 한 잔을 음미하고 싶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가슴으로 음미하며

엽서 한 장을 그리운 친구에게 띄우고 싶다.

 

 

117일 수요일 맑음

어제 약도 다 떨어져가길래 파티마병원 소아과에 전화 걸어 물어보았지.

약 먹고 있는 중인데 예방접종해도 됩니까?”

열만 없으면 상관없습니다. 내일 오후 1시 이후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래서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

마침 너와 놀기 위해 일찍 올라온 진연이 누나와 함께 가기로 했지.

저번에 엄마 혼자 갔다 오려니 너무 힘아 들어서 같이 가지고 하니까 널 귀여워해주는 누난 좋다고 금방 승낙했지.

저번엔 갈 때부터 올 때까지 세 시간 가까이 잠만 잤기 때문에 짐만 무겁게 들고 다닌 것 같아 괜히 약이 올라 이번엔 잠자는 널 깨워 젖먹이고 1회용 기저귀로 갈아 끼우고 기저귀 몇 개 담아갖고 누나와 함께 갔다.

병원에서 누나보고 앉아서 널 안고 있게 하고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 3층 병동에 병문안도 할 수 있었단다.

성배는 퇴원하기 전에 있었던 그 병실에 다시 들어왔더구나.

예방접종 BCG를 맞는데 어깨에 맞았다.

늦어도 보름 전에는 맞았어야 하는데 병원신세 지는 바람에 늦어서인지 BCG 맞는 애들 중에선 네가 젤로 크더구나.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은 응애 응애 다들 울어댔지만 너만큼은 용케도 울지 않더군.

물론 잠결이라서 잘 몰랐을 테지만.

밤엔 잘 자지도 않고 보채는 바람에 애 많이 먹긴 했어도 낮에 자는 바람에 한결 수월할 수 있었다.

용감한 네가 신통방통하고 그런 네가 무진장 대견스럽구나.

 

 

일기장에 매 페이지마다 그림이나 글귀가 있는데 아마 그 페이지에 마음을 울리는 시구가 있어 일기 대신 내 마음을 적은 것 같다.

날 떠난 사람인데 바보같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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