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월 맑음 (11.14 음)
어제저녁 6시가 조금 못되어서 갑자기 기분이 묘했지.
왠지 알아?
밑이 축축하고 뭔가 자꾸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잖아. 그래서 큰 이모한테 전화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아빠한테 얘길 하니까 같이 병원엘 가자는 거야.
그래서 급히 서둘러 집을 나섰지. 아직 예정일이 10여일이나 남고해서 그저 진찰이나 받아볼 요량으로.
한데 병원에 가니까 양수가 터졌다고 입원해야 된대. 그래서 그대로 입원하고 진통촉진제를 맞았지. 밤에는 그럭저럭 가끔씩 진통을 겪으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룻밤을 보냈단다.
아빤 그 앞 빈 병실에서 주무셨는데 엄마완 달리 드렁드렁 코까지 골며 잘도 주무시더구나.
아침이 되어 또 다른 묘한 기분이 들어 살펴보니 이슬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한 산통은 없고 다만 간헐적으로 오는 진통에 하루 종일을 시달려야 했지.
어제 저녁 빵과 우유 먹고 관장한 이후론 물 한 모금 마신게 없으니까 배도 고프고 허기지고 기운도 없고...
큰 이모와 이모부가 다녀가시고 목사님 사모님 다녀가시고 민철 아저씨 다녀가고...
아무튼 그렇게 다섯 시가 넘도록 진행되었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상태를 살펴본 후 저녁 식사하러 가셨단다. 간호사에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여섯시가 다 되어가자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갑자기 진통이 심해지는 것 같더구나.
참다못해 아빨 통해 간호사를 부르고 곧이어 분만준비에 들어갔지.
몇 십분 전만해도 멀다고 하더니 막상 분만대에 올라가니까 금방이라도 널 낳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
의사가 없는 모양인지 힘주려는 엄마에게 간호사 누나들은 힘주지 말고 숨만 크게 토하라는데 도저히 도저히 참기 힘들더구나.
곧이어 의사가 오고 서둘러 준비하고 산통과 함께 힘주고 실패. 다시 한 번 끙 차. 또 한 번. 무언가 묵직한 것이 빠져나옴을 느끼는 순간 계속해 힘을 주었더니 쑤욱 하고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지. 시간은 6시 27분.
그 순간 엄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줄 아니? 시원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나도 해냈구나 하는 거였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넌 이미 신생아실로 간 후 물어보니 아들이라는 구나.
아들 낳았다고 아빤 기분이 너무 좋으신지 한잔 하고 오신다고 나가셨어.
병원에 갈 때마다 네가 너무 커서 낳을 때 고생하겠다고 했는데 네가 예정일보다 열하루나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3.1kg 정상으로 낳아서 엄마가 고생을 좀 덜한 것 같애.
이럴 땐 성질 급한 네 덕을 본 것 같구나.
12월 12일 화 맑음
바로 들어오실 줄 알았던 아빤 2시가 되어서야 들어오셨지.
오셔서 술 먹은 목소리로 엄마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엄마 침대에서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빠의 코 고는 소리에 한 방에 있던 할머니 두 분이 밤새 잠을 설치셨대. 엄만 비좁아서 설치고.
하룻밤 새 인정 많은 병실 사람들과 이별하고 퇴원을 했단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제대로 못 먹던 엄만 아침엔 제법 먹었지.
원래 아이를 낳으면 3일 만에 퇴원을 하는데 여긴 종합병원이라도 제주라 그런지 시설이 떨어지는데다 산모만을 위한 병실이 아니어서 차라리 퇴원해서 집에서 조리하는 게 낫다는 할머니들의 조언에 따라 퇴원수속을 하고 널 안ㅇ고 병원 문을 나설 때에야 비로소 네가 내 아들 어진이인가 하는 마음이 들더구나.
엄마와 넌 방에 누워있고 아빤 여기저기서 엄마에게 끓여줄 것들 산다고 분주하고 사모남아 다녀가시고 한 선생 왔다가고 큰 이모가 수고 많이 해주시고…….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빠가 지칠 대로 지쳐서 목욕탕 가고 나서 막내 고모가 엄마 뒷바라지 해주러 오지 않았겠니?
장항서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하고 힘들었을 텐데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만 하는 것 같다.
낮에만 해도 잘 놀고 잘 먹던 네가 밤이 되어서 우유를 모유로 바꾸려니까 적응이 안돼서인지 엄마 젖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인지 넌 계속 보채고 울기만 해서 엄만 엄마대로 당황하고 아빤 아빠대로 신경 쓰이고.
내일 일을 하시려면 잠을 푹 자둬야 할 텐데…….
그래서인지 상당히 짜증스런 표정이다.
고모도 코골고 아빠도 코고는 터라 엄만 살짝 나와 부엌에서 미역국을 데워 먹는데 웬 눈물이 그리 나오는지.
배가 고파 억지로 먹기는 하지만 눈물국만 먹고 말았다.
엄마의 길 부모의 길은 이렇게 눈물 나고 이렇게 어려운가보다.
아이를 낳을 때의 일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 여러 날이 지난 다음 아들을 재워놓고 기록해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