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이야기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것

순례 2014. 8. 12. 12:33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분명 기쁨이고 설레임이리라.

그러나 지천명인 지금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조심스런 일이고 누군가 날 좋아한다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이 들어서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새삼스레 노심초사 하는 모양도 우습고 애써 외면하며 내 마음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모양 또한 우습다.

평생 마음 한구석 자리 잡은 그 마음 하나 떨치지 못하는데 새로운 마음하나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좋은 친구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금은 감정을 숨기고 표현을 절제해야만 한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이 힘들어서였으리라.

내 마음이 외로운 까닭에 수도권 동창모임을 주선하였다.

처음에 주선할 때만해도 개인적으로 시간 내기도 어렵고 새삼 단 둘이 만난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고 해서 종숙이와 우선 시간을 맞춘 뒤 안영민과 통화하였다.

사실 이번 모임에 공개적으로 안영민을 만난다는 사심이 크게 작용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모임에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아쉽긴 했지만 할 수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가장 가까이 사는 서철석이란 친구가 있다.

그런데 상록이나 정훈이 이야길 들어보니 참석 안할 확률 100%였다.

나랑 카톡할 때만해도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부정적이어서 큰 기대는 안했지만 그렇다고 포기도 안했다.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랑 친해지면 가끔 외로울 때 만나 술 한잔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모임에서 만나지 않으면 따로 만나기도 그렇고 길가다 마주쳐도 서로 몰라보고 지나갈 게 뻔하다.

처음에 멀어서 못 간다는 걸 같이 만나서 가자고 하니까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연락을 따로 안했다면 참석 안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친구인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얼굴이야 그날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동안 밴드하고 카톡하고 통화하면서 사진으로 얼굴 익혀서인지 강동역 전철 안에서 처음만나 악수하고 1시간 이상 같이 가는 동안 많이 친해졌다.

모임을 한 후에 날마다 카톡하며 친분을 쌓았다.

처음엔 괜찮은 친구라 생각하였다.

그러다 좀 재미있는 친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카페에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안영민에 대해 물어왔다.

난 별로 알 필요 없다는 뜻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한건데 그 말을 곡해하였는지 저는 키도 작고 그래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기분 나쁘다며 나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했다.

처음엔 좀 당황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나 때문에 마음 상했다니까 전화 해서 열심히 해명하며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래서 조금 마음을 풀고 며칠 후 하남 번개팅에서 만나 다시 예전처럼 지냈다.

그러다 또 한 번의 위기가 왔다.

카톡을 주고받다가 먼저 상록이랑 다르다고 얘기하기에 거기에 장단을 맞추었더니 또 다시 맘이 상한 모양이다. 비교하지 말라는 뜻으로 미리 연막을 친건데 비교했다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여 상록에게 알아봐 달라고만 하고 나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틀 뒤 생일이어서 밴드에 올려도 묵묵부답 카톡에 생일 축하 인사말을 건네도 읽어보기만 할뿐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렇게 일주일이 가는 동안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

지난번처럼 내 잘못으로 맘이 상했다면 어떻게 풀어주기라도 편할 텐데.

이젠 지가 나 좋아하는 줄 뻔히 알면서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런 상황이다.

그냥 놔두자니 친구하나 잃을 것 같고 아는 척하자니 위험천만이고

그래도 일주일 내내 연락을 안하다가 모르는 척 하고 전화를 걸었다.

우리 서로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날(금요일) 밤에 만나서 술 한 잔하며 이성보다는 친구로 지내기로 무언의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연락을 계속 했었다면 지난 토요일 생일밥 사주려고 했다니까 내일 그 밥 사달란다. 일요일 친구들에겐 생일 축하문자가 계속 오는데 정작 가족들은 모르고 지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토요일에 저녁 먹으면서 완전히 예전처럼 카톡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회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만나기는 하면서 위태롭기는 했다.

계속 관계를 이어가자니 뜻대로 잘 안되고 그렇다고 방치하기도 좀 뭣하고 그래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가는데 그쪽에선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결국 엊그제 카톡하면서 다시 어긋나버렸다.

이제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 쓰일 때마다 꾸던 꿈도 이제 다시는 꾸지 않고 무겁던 마음도 이제 홀가분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 친구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이 이제는 편안해졌다.

계속 관계를 유지하다보면 어쩌면 내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흔들리기 전에 아니 마음을 뺏기기 전에 이렇게 정리가 돼서 오히려 다행이다.

하긴 말이 좋아 친구지 학생 때 사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일면식도 없었던 친구를 30여년 만에 만나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서 얘기도 조금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온 세월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였으나 역시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잠시 스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이제는 정말 굳건히 잡으리라.

내 마음이 흔들릴 때 안영민에게 그런 말을 하였다. 내 마음이 이제 떠나갈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그렇게 쉽게 변할 니 마음이 아닌 줄 내가 아는데 그래도 떠난다면 할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했던 말.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말로는 이제 민에게 향했던 내 마음 다 내려놓겠다 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자꾸 말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민이든 누구든 이젠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내가 석이에게 했던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30여년 알고 지낸 친구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안 친구완 확실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젠 나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정말 내가 바로서기 해야 할 때이다.

좋아했던 건 과거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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