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이야기

기나긴 날들

순례 2014. 6. 28. 00:01

엊그제(25) 아무래도 남편이 심상치 않아 진은철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내일이나 모레쯤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묶지도 않은 콩돌이 혼자만 있다.

전화기는 꺼져 있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11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자 무슨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아니길 바라며 내일을 위해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쯤 자고 있을까? 기척에 놀라 깨었다. 그 때가 새벽 2시였다.

오자마자 쓰러져 누웠다가 일어나서 순례야! 나 좀 병원에 데려다 줘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무슨 일 났으면 지금 여행 중인 딸도 그렇고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중학교 동창모임을 하게 되는데 주선자가 참석 안하는 것도 그렇고 어찌되었든 돌아와 준데 대하여 안도하며 감사했다. 그리고 잘됐다 싶었다.

어차피 이 상태로 가족 모두 힘들게 하는 것 보담 병원에 있으면 가정의 평회라도 있으니까

그 뒤로 수시로 화장실 들락거리는 바람에 나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새벽부터 나가서 또 들어오지 않는다. 나간 이유가 뻔한데 걱정이다.

잠깐 다시 들어와서는 갈 채비 하느라 캐리어에 짐을 챙겨 넣는다. 그리고 서두른다.

일단 회사 갔다가 갈 거니까 준비 하렸더니 다시 나갔다.

 

난 일단 일찍 출근하였다.

바쁜 일과 꼭 처리해야 할 일들 처리하고 10시에 조퇴하고 나왔다.

잠시 은행에 들려 카드 결제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가 출근할 때 그대로다.

이 상태로 장거리를 가기엔 너무 벅찰 것 같아 아침에 끓여 놓은 누룽지를 반 강제로 먹게 하고 출발을 하였다.

아침까지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가는 내내 물통의 물을 계속 따라 마신다.

그러다보니 휴게소마다 들리는데도 중간에 졸음쉼터에서 또 일을 보고 가게 되었다.

더 가다가는 그것조차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비닐봉투와 종이컵까지 사용하였다.

그렇게 얼마쯤 가다가 터널에서 갑자기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이미 본정신이 아니라 남의 정신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용변 볼 것을 찾는데 쉽사리 찾아지지 않자 안절부절못한다.

그래서 내가 종이컵을 찾는다고 하다가 그만 앞차를 박고 말았다.

처음엔 내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은 줄 알았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이 종이컵 찾는다고 떼어진 모양이다.

다행히 정체된 상태에서 박은 거라 살짝 박았고 별 흠도 나지 않았지만 앞차 주인은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곧바로 이리저리 사진 찍고 내게 연락처 달라기에 명함을 주었는데 전화기 달래서 번호 저장하고 보험처리 할 테니 그리 알라고 했다. 명함은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미안하다고 해도 아무 소용도 없다.

말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지만 남편에게 와락 짜증을 내었다. 그러게 왜 그리 술 먹고 사고 나게 만드냐고. 그렇게 여러 번 다녀도 사고한번 안냈는데 이게 뭐냐고.

정체상태로 겨우 터널 끝자락에 나와서보니 앞부분이 완전 찌그러진 차에, 옆문이 찌그러진 차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에 사고 난 차가 너댓대 되었다.

터널 안에서도 일을 두 번이나 보았는데 터널 지나서 바로 휴게소에 또 들렸다.

거기서 아까 내가 박은 차주인은 차 뒤쪽 부분을 계속 찍고 이어서 렉카에 끌려 온 차를 보니 앞 유리가 다 깨져 없어졌고 문짝이 안 닫히는 상태다. 뒤이어 사고 차량들이 줄줄이 들어선다.

우리 차도 터널 진입하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브레이크가 잘 밟아지지 않아 안타까워 하는데 앞차가 속도를 조금 내 주는바람에 사고가 날 뻔 한걸 겨우 막았는데 터널에서 결국 박았으니 앞차 주인 화 날만도 했다.

만약 그대로 앞차를 들이받았다면 렉카에 실려오는 저 차들과 같은 신세였겠구나 생각하면 오히려 경미한 접촉사고가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병원 가는 길에 졸지에 두 아이 고아 만들뻔 했다고 생각하니 순간 아찔하였다.

사고 때문이었는지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그 뒤로 남편은 잠잠하였다.

예정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하여 수속을 밟는데 죽어도 자의가 아니면 입원을 안하려고 해서 무진 애를 먹었다.

결국 여러 사람의 설득 끝에 겨우 보호자 동의하에 입원수속을 마쳤다.

 

엊그제 광양 사는 순희 시어머니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일부러는 너무 멀어서 못 가고 혹시나 남편 때문에 가게 되면 갔다올까 생각했는데 마침 일이 그렇게 되어서 남편일을 잘 마무리하고 서둘러 나오면서 광양의 장례식장을 찍으니 두 군데 나왔다.

그래서 상영이한테 주소를 묻고 나름 추리해서 두 군데중 한군데를 택해 길을 가고 있었다.

조금 있자니 상영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가 찍은 그 곳이 맞았다.

순희에게 직접 물어봤다는데 난 일부러 모르게 가려고 했다. 그래야 깜짝쇼가 더 빛날것 같아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해 잠시 얼굴보고 식사하고 곧바로 올라왔다.

올라오면서 휴게소에서 밴드에 올렸더니 준수가 대전쯤 내려간다 했다. 나야 의령서 가는거라 그렇다치더라도 인천서부터 언제 갔다오나싶다.

아무튼 참 대단하다. 그 친구 말고도 청주에서 버스로 내려오는 친구도 있다했고 일림이와 춘옥이도 왔다갔다했다.

7시 반쯤 광양을 출발해서 오수 휴게소를 지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상하게 지방에 갈 땐 대부분 밤인데 비도 잘 만난다.

어쨌든 얼마를 더 가자니 비가 그쳤고 지난주에 군산에 조문하느라 지났던 그 길을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분당까지 와서야 외곽을 타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중간중간 막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처음 예상시간과 거의 맞게 도착하였다.

전에는 죽더라도 거들떠 보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이젠 남편이 밉기보다는 불쌍한 생각이 든다.

부모를 잘 만나 제대로 배웠다면 참 괜찮았을텐데.

그 좋은 머리로 배우지도 못하고 세상을 향한 적개심이 많아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저리 된것이....

거기에는 분명 내 책임도 있을터인데 나조차 나몰라라 등한시한 것도 한몫 했으리라.

이번엔 제대로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했으면 좋으련만.

 

 

사고 나기 전 괴산 휴게소

 

돌아오는 길 오수휴게소-주인을 살리고 목숨을 잃은 의로운 개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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