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큰맘 먹고 외출을 하였다.
진작부터 그 사람을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늘 살기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언젠간 그와 함께 했던 둘만의 공간을 꼭 한번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오랜만에 2호선을 탔다. 그런데 전엔 전철 오는 간격도 길고 가는 것도 천천히 간다 싶었는데 오늘은 금방 떠나고 곧바로 들어오는가 하면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잠시 딴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두세 정거장이 후딱 지나있었다.
아무튼 나는 맨 먼저 처음으로 그와 약속을 했던 프레지던트 호텔을 찾았다.
시간이 늦어 지하철에서 나와 호텔 커피숍을 향해 바쁘게 길을 가는데 전화를 받으며 다리를 들어 나를 제지 시키는 바람에 결국 호텔 커피숍은 가보지 못하고 곧바로 식사하러 갔다.
그래서 그 호텔이 어떤 곳인지 전화를 받으며 나를 제지 시켰던 곳은 어디였는지 찾은 것이다.
내 기억속의 장소는 막 급하게 뛰는데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저지당했는데 그렇다면 시간상이나 거리상 프라자 호텔 앞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그때는 그 자리에 그렇게 큰 건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가까운 프라자 호텔 대신 프레지던트 호텔로 약속을 잡았겠지. 아니면 지하부터 뛰었기 때문에 막상 나오자마자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거나 난 서울 지리가 생소할 때였으니까.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이 한양대학교였다.
전철역에 내리자 많은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전엔 정문 쪽에 출구가 있었는데 이젠 학교 안 본관 앞에 출구가 생겼다.
다행히 학생들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서 빙 둘러서 더구나 가파른 오르막을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출구가 낯설 듯이 학교 풍경도 많이 낯설다.
매점에서 음료와 먹을거리를 사서 먹으며 이야기하는 곳으로 잘 찾던 곳이 등나무 아래였는데 내 기억으론 본관 앞에 있던 걸로 기억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 강의를 듣던 곳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있고 가끔 산책로로 사용했던 자연과학대학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대로인 것 같다.
교문 역시도 많이 바뀌어 거의 개방형태가 되었듯 변한 곳도 많고 그대로인 곳도 있으나 그가 없는 그 공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디에도 없던 그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없다.
낯선 교문을 나와 내친김에 그의 집에 한번 찾아가보리라 하였다.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그냥 미친 척 1시간가량을 이동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날씨가 좋았으나 흐린 후 비 온다는 정보를 검색하고 우산을 챙겼으나 버스 안에서 잠깐 소나기가 왔을 뿐 내내 날씨는 좋았다.
그런데 전철역에서 나오니까 소나기인지 장맛비인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더니 빗줄기가 가늘어졌고 가늘어진 틈을 이용해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는데 또 빗방울이 굵어졌다.
애당초 비가 왔으면 오늘 나서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역에 도착했을 때 계속 큰비가 오면 그냥 돌아서리라 했다.
그런데 잠시 가늘어져서 길을 건넜고 버스를 탔다.
가다보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맑아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랑비가 잠깐 왔으나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집에 가니 복도에 나있는 작은방 창문과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아마 더워서 열어 놓은 것 같다. 그 집 말고도 몇 집이 열어놓은 집이 있으니까.
어디에도 없던 그는 그곳에 있었다.
밖에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 통화 하는 것 같았다.
잠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였지만 곧 그의 아내 목소리가 들려와서 스치듯 잠깐 그의 모습과 문밖에서 목소리 잠깐 들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잠깐이나마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목소리 들은 것으로 충분하다.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멈추었던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