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지 3일 만에 시작된 남편과의 인연
사랑하던 사람이 군화 거꾸로 신은 충격에 날마다 깊은 슬픔에 잠겨 지내다 죽고 싶은 생각까지 하였다.
그 때 도피처로 간 곳이 제주였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남편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결혼이라도 해보고 죽자는 생각에 아는 거라곤 이름 석 자와 나이밖에 모르는 사람과 살림을 시작하였다. 나이가 있는 만큼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적어도 책임을 지겠구나 하는 믿음 하나로.
그러나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 사람이라 했던가!
며칠 지나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살아온 환경, 지배하는 사상, 세대차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맞는 게 없었고 대화 상대가 안 되다 보니 갑갑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갈등도 하고 후회도 했지만 이미 친정 식구들에게 외면까지 당한 마당에 달리 어찌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 그나마 나를 지탱하게 해주었다. 내가 남편 전에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이 죄책감이 될 정도로 그 사랑이 지극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극진한 사랑이 간섭처럼 느껴지면서 미안했던 마음이 오히려 결혼 전에 다른 사람을 사랑 했던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너무 다른 환경과 성격 탓에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이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큰 아이 낳고 죽으려고 약까지 먹었다.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죽지 못하고 다시 살면서 애정도 없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아내의 의무로 살았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고 했던가!
똑같은 말이라도 내가 하는 말은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솔깃하게 듣는다.
남편의 일방적인 사랑은 나에 이어 아이들에까지 이어졌다. 그 지극한 사랑이 간섭을 넘어 하나의 소유가 되고 집착이 되었다.
그리하다보니 나는 점점 남편을 멀리하게 되고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학대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망가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수년이 흐르는 동안 숱하게 많은 이혼의 위기들.
돌이켜보면 남편에게 받은 상처가 많다. 큰 아이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건강하던 내 몸 다 망가진 것하며, 싸우느라 시한선고 받은 엄마에게 전화도 못하고 명절 때 찾아뵙지도 못해 평생 두고두고 한이 되는 것이나, 결혼식도 못한 상태에서 중풍 걸린 시어머니 단칸방에 모시며 병수발 든 것이며, 자신이 망가지는 것도 부족해서 나와 아이들까지 그리 심하게 상처 입힌 일들...
남편의 가장 부재로 인해 대신 짊어졌던 가장의 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 고통 속에 울부짖었는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영원히 그런 남편을 사랑할 것 같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어쩐 일인지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어디를 가자고 하든 무엇을 하자고 하든 늘 못마땅하였다. 가족들 의견보다는 늘 강압적으로 밀어붙여왔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 우리생일(남편과 나의 생일이 같음)은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들 부르고 남편에게 통보하여 정말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사람은 오래 만났다고 다 인연도 아니고 쉽게 만났다고 꼭 쉽게 헤어지라는 법도 없다. 내가 남편을 만나 살면서 느낀 것은 부부의 인연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땐 아무렇게나 만난 것 같아도.
남편이 나를 만날 때 며칠 안에 여자를 주지 않으면 육지로 가겠다 하나님께 엄포를 놓을 때였으니 말이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기를 혼인은 인륜지 대사라 했거늘 한 평생 살 사람을 그렇게 며칠 만에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들에게 3일 만에 결혼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면서 생일이 같다 그러면 천생연분이다 그런다.
아무튼 아들은 양부모에게 두뇌가 뛰어난 쪽만 유전 받았고, 딸은 양쪽으로부터 미모가 뛰어난 쪽으로 유전 받았으니 이만하면 남은 여생 함께해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