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목 맑음
어진아!
엄마와 아빤 13일 날 이사하기로 했단다.
지금은 좀 힘들고 어려울 테지만 한두 달 지나고 나면 좀 나으리라 생각한다.
어진아!
요즘은 너의 운동력이 부족한 것 같아.
쉴 새 없이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 처음 운동할 그때처럼 세차지 못하고 약하구나.
하지만 이것도 다 성장과정중 하나니까 걱정할 것까진 없겠지?
저녁에 아빠와 함께 바람 쐬러 나갔지 뭐니.
엄만 거리에서 힘자랑해서 70점까지 얻기도 하고 아빤 윷놀이해서 맥주 두병을 따기도 했단다. 덕분에 유쾌한 밤 한때를 보낼 수 있었지.
이제 이럴 수 있는 말도 며칠 남지 않았을 거야.
왜냐면 가게를 갖고 보면 잠시라도 비울 수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예쁜 어진아!
예쁜 꿈꾸렴. 안녕
8월 11일 금 맑음
이제 내일이면 이사하기 위해 잔금을 지불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는 은행과 신협에서 각각 찾아다 놓았지.
저녁때 들어오신 아빠는 모처럼 갈비 먹으러 가지고 하셨어.
갈비로 저녁을 먹고 이사할 집 주인 만나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큰 이모 집에 갔단다.
같은 제주 땅에 살면서도 네 사촌들을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나보았단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 집도 저녁은 마친 시간이더구나.
그래서 수박을 먹으며 아빠와 이모부는 또 주거니 받거니 양주를 기울이고...
준다고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신 네 아빠는 글쎄 고주망태가 다 되었단다.
언제나 그렇지만 술 취해도 헛소리나 실수는 안 해도 발음이 잘 안 되는 말 하려니 말소린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어쨌든 이젠 이사할 수 있다니 정말 기쁘다.
오늘은 몹시 피곤하구나.
밤도 깊었고 자 우리 꿈에서 만나자꾸나.
8월 12일 토 맑은 후 흐림
나의 사랑 어진아!
엄마 아빤 드디어 내일이면 이사한단다.
아빤 아침 일찍 일하러 가시고 엄마도 바쁘게 서둘러 빨래를 하고 집안을 치워놓고 나섰단다.
전신전화국에 들려 전화 이전 신청을 하고 커텐집에 들렸다 이사할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못되었더구나.
이사하느라 어지럽게 늘여 벌여놓은 책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방을 대여섯 번 닦다보니 어느새 기운이 빠지더구나.
그래도 비울 수 없어 그 더운 날씨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지.
그렇게 있지나 도배하러 왔고 또 한바탕 책은 난장판이 되었겠지.
대충 치워놓고 그제서야 겨우 밥 시켜 먹었으니.
어진이가 엄마 때문에 같이 힘들고 배고팠겠다. 그치?
다시 이번엔 순서대로 정리한다고 한참 하고 있자니 아빠가 오셨고 아빤 부엌에 타일을 붙이고..., 저녁으로 갈비를 먹고 왔지.
내일 이삿짐을 꾸리고 하려면 피곤하기도 할 텐데 아빤 사진(여름성경학교) 정리 하느라 주무실 생각을 않는구나.
어진아!
우리 내일 새집에서 만나자.
8월 13일 일 맑음
몹시 지쳤다.
어제 오후 내내 가게 있었고 이것저것 정리한다고 서성였더니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겨우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오늘 우리교회 해변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
그래서 석양예배까지 드리고 오기로 되었는데 엄만 너무 피곤하여 먼저 집으로 돌아와 쉬기로 하고 아빠만 다른 교인들과 함께 함덕 해수욕장으로 떠나셨지.
늘 아빠와 함께하다 오늘 따로 발걸음 하려니 왠지 마음이 이상하더구나.
돌아오는 길에 아는 이모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면서 이삿짐 또한 제대로 챙기지 못하느라 돌아온 아빠로부터 면박당하고 그때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다행히 곧바로 달려온 이삿짐센터의 아저씨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이삿짐을 다 싣고 떠날 수 있었지.
드디어 우리가 살 집에 도착하니 이미 교회 청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로 하여금 빨리 정리가 되었다.
역시 피곤하구나.
이제 새집 새방에서 피곤을 함께 풀자꾸나.
8월 14일 월 맑음
이사도 했고 하니까 어른들 모시고 이사 예배라도 드려야 할텐데 저녁을 어떻게 준비할까 걱정이다.
어제 그제 지치신 아빠도 오늘 하루쯤은 쉬기로 마음먹었지만 도대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마침 아빠의 양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찬거리를 사고 준비에 들어갔다.
남에게 대접은 수없이 받아왔어도 대접을 한 적이 없는 엄마로선 하나에서 열까지 난감할 뿐이었지.
동광양에 살 땐 엄마 아는 사람 몇 명만 스스럼없이 드나들었지. 방이 비좁다는 이유로.
우리(엄마, 아빠) 생일날 목사님 내외만 초대했을 뿐 이렇다 할 손님 접대를 해본 적이 없단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양어머니가 오며가며 이것저것 장만해 주시고 신경 써 주시는 바람에 목사님과 사모님 그밖에 아빠의 결혼을 위해 기도에 힘써주신 몇 분의 집사님들과 함께 그럭저럭 이사예배를 마쳤단다.
가장 어른들이고 어려운지라 그렇게 치르고 나니까 조금 긴장이 풀린듯하다.
오늘도 피곤하긴 역시 마찬가지구나.
우리 어진이 건강하게 잘 자라다오.
8월 15일 화 맑음
오늘은 언니(큰 이모)네 가족과 벌써부터 식사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이사하는 바람에 언니네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교회 청년회가 오늘 단합대회가 있어 모두 준비해 갖고 교회 가보니 정작 참석할 사람이 서넛밖에 없는지라 일정을 바꾸어 목사님과 함께 기도원엘 가기로 했다는구나.
그래서 준비해온 음식물을 우리 집에 맡기고 저녁을 여기서 먹기로 약속을 했지.
청년은 7시에 이모네는 8시로 잡았는데 청년들이 그만 늦는 바람에 겹치고 말았지.
청년들이 준비한 점심으로 닭고기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닭도리탕 하여 이모네 네 식구와 우리 두 식구 먹고 청년들 네댓 명 먹으니 딱 맞더구나.
식사 후 어제 사온 수박을 내놓으니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더구나.
어제보단 덜 부담스럽고 꽤 유쾌한 저녁이었지.
아빠 말로는 아직도 치러야 할 손님들이 많다고 하시는데 벌써부터 은근히 부담된다.
8월 19일 토 비 온 후 맑음
제주에서 제법 큰 타일 가게로 ‘대경타일’과 ‘동일건재’가 있는데 아빤 이쪽저쪽으로 연결되어 일해 오셨지.
어제인가 그제인가 동일건재와 관련된 몇 사람을 초대한 모양인데 오지 않아 괜히 허탕만 치고 오늘은 대경의 온 식구들이 출동했다.
가게 보느라 시장한번 제대로 못 본 탓도 있지만 변변히 할 만한 음식도 없고 해서 만만하니 또다시 닭도리탕으로 상에 올렸다.
월, 화만 해도 어머니가 장만해주신 반찬 덕분에 상 위가 푸짐했는데 오늘은 왠지 초라한 느낌이고 그로인해 미안해 혼났다.
글쎄 초대를 했으면 좀 근사하게 치렀어야 할 텐데 제대로 한 것도 없고 더구나 밥까지 모자라는 바람에 민망했다.
하지만 이젠 좀 한시름 놓았단다.
왜냐면 당분간은 특별히 초대 손님이 없기 때문이지.
다만 오고가다 오는 사람 외엔.
오늘 밤 만큼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