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첫날인 토요일 딸내미와 시장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약속이 있다는 말에 혼자 집에 있기 뭣해서 산에 가기로 했다. 혼자서 먼 산 가기는 뭣해서 가까운 남한산성엘 가기로 했다. 갑자기 가기로 결정한 것이라 막상 일어나보니 도시락을 쌀만한 마땅한 재료가 없어 고구마 삶고 있는 재료 동원하여 주먹밥을 만들고 고구마 말린 것과 떡과 식혜를 싸들고 나섰다. 남한산성은 숱하게 다녔지만 정작 남한산이라고 표시된 곳에는 간적이 없기에 이번엔 작정하고 남한산을 목표로 삼았다. 지도상 위치9를 살펴보니 벌봉 옆쪽이었다. 그래서 늘 돌던 성곽 안쪽보다는 밖으로 돌기로 하였다.
남한산성 입구에서 9번 버스를 타고 종점으로 가서 북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성곽을 끼고 걸었다. 걸어가는 내내 두런두런 사람 소리는 들리지만 정작 만날 수는 없었다. 성벽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성벽을 끼고 한참을 돌다가 너무 가파른 지점에 다다르자 그 옆쪽으로 조금은 덜 가파른 길이 나 있어서 조금은 덜 힘들게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며 얼핏 보니 성벽 안은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늘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던 곳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은 수월하게 올라가다 샛길로 빠져 하마터면 자칫 길을 잃을 뻔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벽을 찾아 올라가니 다시 길이 나왔다. 다른 곳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아래로 가거나 물길 따라 가는 것이 정석인데 그곳에선 성벽 찾아 가는 것이 정석이다. 그곳으론 아무도 가는 사람이 없어서 지루하고 무성한 수풀을 헤집으며 나아가야했다.
그렇게 얼마쯤 가다보니 넓은 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나오고 사람들도 보여서 보니 벌봉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래서 쉬기도 하고 식사도 할겸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60 전후로 보이는 여자분 넷이 의자에 앉아 먹는데 그 옆이 비었기에 같이 앉기를 청하였다. 준비한 먹거리를 꺼내 인증샷을 하고 시원한 식혜를 드리니까 여러 가지 과일을 챙겨주신다. 그래서 누룽지도 드렸더니 치간 칫솔도 주시기에 네잎클로버를 하나씩 드렸다. 마천동에서 성벽 외곽으로 돌아왔다는 그들은 안으로 편한 길을 택하여 가고 난 성문을 나서서 벌봉쪽으로 향하였다.
가다가 이정표 갈림길에서 한 무리의 일행을 만나고 우연히 목적지가 같다보니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맨발이었다. 벌봉에 도착하니 큰 바위가 솟아있고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가 신기하게 잘 자리잡고 있었다. 그 일행들 단체 사진 찍어주고 나도 사진 찍고 다음은 한봉이라 계속 동행을 하였다.
한봉 가는 길에 엄미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산을 잘 아시는 분을 만나 남한산에 대해 물으니 좀전에 지나쳐 왔다고 한다. 성벽을 끼고 다시 올라가면 표지석이 있다고 하여 함께 다시 올라갔다. 이정표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남한산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찾기도 어렵거니와 표지석도 아주 작아 사진 찍기도 아주 난감하였다.
그렇게 또다시 인증샷을 한 후 한봉을 향하여 갔다. 한봉이 성벽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한봉에서 내려오는 길엔 지천이 밤 천지다. 그전엔 밤이 눈에 뜨여도 산짐승들 먹으라고 두고 왔지만 많아도 너무 많은 밤이라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주워왔다.
큰길로 나와 평탄하게 좋은 길로 갈수도 있지만 그들 일행중 한 명이 장경사에 왔다고 다시 산을 타고 암문으로 가기에 계속 따라다녔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갈 길은 같기에 장경사에서 일부는 도로 따라 내려오고 일부는 성벽타고 동문까지 내려왔다. 거기서 쉬면서 간식을 먹을 것 같아 난 이제 집에 가면 그만이고 음식은 많이 남아서 남은 음식 다 나누어 주었다.
맨발로 걷던 사람은 숱한 밤송이 밭도 그냥 지나고 장경사에 도착하기 전 계곡에서 발을 씻고 신발을 씻었다. 평소 마라톤을 즐긴다는 그는 맨발로 다닌 지 몇 년 돼서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했다. 밤송이 밭을 맨발로 지나가기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엔 못 나가도 내 글에 써주겠다고 했는데 내 글을 볼 기회가 있기나 하려는지.
몇 년 전만 해도 혼자서 산에 가는 게 싫어서 밴드 만들어 같이 다녔는데 이번엔 혼자여도 여유가 있고 덕분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동행한 뜻 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제대로 길도 잘 찾지 못했을 테고 시간도 한참 더 걸릴 뿐만 아니라 너무 한적한 곳에서 혼자 헤맸을 뻔했다. 덕분에 감사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