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안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4월 28일
하남 문인협회에서 원주 박경리 문학관으로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된 김영란님과 작년에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신 안인자님을 초대하여 함께 갔다.
작년엔 친하게 지내던 김순오 집사가 있었는데 재혼하면서 멀리 양산으로 갔기 때문에 마땅히 친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둘 다 초대에 응해 주었고 양쪽에 같이 앉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서 사진도 찍고 산나물을 곁들인 점심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었다.
문학공원에서는 박경리 작가의 숨결도 느껴보고 살아온 세월도 듣고 시낭송도 나누었다.
끝으로 한지 박물관에서 적악산이 치악산이 된 내력도 듣고 한지로 만든 여러 작품들도 감탄 속에 감상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많이 밀려서 늦을 거라 했는데 기사분이 이리저리 국도로 해서 거의 제시간에 도착하였다.
4월 29일
회사에서 29일 납품하는 롯데마트 용품에 라벨작업을 마쳐 넘기기로 하였는데 프린터 토너가 다 된 바람에 출력이 중단되었다.
이리저이 알아보다 안 되어 사장에게 보고했더니 불려가서 많이 야단맞았다. 하지만 1주일 연기되었으니 마무리하란다.
다행이다 싶으면서 야속하다.
1주일 연기 됐으니 마무리 잘 해 놓으라고 해도 될 일을 못 해놨다고 질책만 했다. 토요일 출근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래 사람들 출근하니 나도 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 바쁘다보니 물류 관리를 내가 한 것이고 그러다보니 토요일은 라벨 작업만 마치고 월요일에 출력하려 한 것인데 구입한 지 한 달 남짓한 토너가 그렇게 빨리 소모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은 프린터 구입은 작년에 한 것이지만 중고를 구입한 것이고 그것이 아주 귀한 모델이기 때문에 10군데 중 토너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단 두세 군데고 그나마 다음 날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날 롯데마트에 납품 할 용품 중에 한 업체의 용품이 지나치게 많이 남은 것이 또 다른 추궁의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니요, 내가 물류를 관리 한 것도 아니요, 더구나 명세표도 받지 못했다가 그만 둔 이대리 자리에서 뒤늦게 발견하고 업무에 치여 미처 확인도 못하고 입력도 못한 사이 그 화살이 내게 돌아왔다.
그것 하나 확인 못하고 뭐 했냐고. 말은 참 쉽게 잘한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홍부장이 있었고 난 물류 쪽엔 얼씬도 안했는데 내 일만 해도 날마다 야근해도 모자란 시간 이었는데...
결국 이번 주까지 정리하고 그만두란다.
나도 더 이상 미련 없어 그러마고 했다.
업무를 마치고 늦은 시간 황순하 주임이 술 한 잔 산 다해서 치맥 하면서 그 동안의 고충을 서로 토로하였다.
4월 30일
아침 조회가 없어 매장 직원들과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까지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고.
다들 침울한 표정이다.
한 번씩은 아니 수차례 사표의 충동이나 기회를 노렸던 이들이라 뭐라 말을 못하고 다들 침울했다.
그리고 다들 깜짝 놀랐다. 이제 적응도 하고 신임도 받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해고통보를 받았으니...
오히려 아르바이트생들은 담담했다. 수없이 봐 왔던 광경들이었으니까 당연하듯이.
오늘 그만두나 며칠 후에 그만두나 그만두기는 마찬가지인데 대신 개운하게 정리할 건 정리할 시간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무슨 일만 있으면 내게 전화하던 그만 둔 빅마켓 매니저가 전화해 왔다. 그렇잖아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툭하면 전화 와서 물어보고 하는 게 귀찮았는데 그만두는 마당에 왈칵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를 날렸다. 나도 그만두었으니 내게 연락하지 말라고.
그런데 잠시 후 돌아온 문자는 노동청에 사장을 고발했다는 것이었다.
4월 초에 새로 입사한 직원들 보험 가입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을 때 사장은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니 자신이 알아서 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세무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그렇게 말하고 사장에게 직접 통화해서 하라고 했다.
그런데 부가세 신고 하면서 또 다시 보험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직원들의 인적사항 외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장이 다 관리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물었다. 직원들 보험 어떡하느냐고. 그제야 다 가입하라 했다. 하지만 필요사항도 모르고 도장도 받아야하는 부분이라 입력할 수 있는 용지를 출력하여 올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보지도 않고 결재도 없다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책임 또한 내게 다 떠 넘겼다. 가입하라고 했는데 왜 안했냐고. 어차피 그만두는 마당에 이러구저러구 싶지 않아 함구 하였다. 그랬더니 오늘부로 그만두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근로자의 날에 쉰다기에 그 사람 성격에 쉬는 김에 푹 쉬라고 하진 않을까 염려 했었는데 딱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권태준씨 보험처리 하고 택배로 토너 받고 나머지 라벨지 출력하고 혹시 나 때문에 피해는 가지 않을까 하여 한 달간 먹은 식대 계산하고 매장의 아르바이트 급여 계산해 놓고 박지현 대리에게 몇 가지 업무 일러주고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있는 디자인팀에게 인사하고 왔다.
5월 1일
내가 집에서 쉬어도 남편이나 아들이 이상하게 생각 안한다.
근로자의 날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어찌되었든 편하게 쉬고 있는데 남편과 한 공간에 있다 보니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부딪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쌓였던 앙금을 털어내었다.
내일부터 다시 일을 하기로 하였다.
5월 2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들은 늦게 오는 날이고 딸은 바빠서 못 온다고 했다.
아이들과 대화 할 일 있어서 카톡으로 둘을 불러놓고 셋이서 주고받는 중에 볼일은 일단락 지어놓고 아들에게 혹시 늦게 오면 우리 둘이 저녁 먹겠다 하니까 일찍 오면 어찌 되냐고 반문한다. 일찍 오면 셋이 먹자 했더니 딸이 자기도 끼워 달랜다.
그래서 시간 잡고 둘 다 집에 모여서 같이 가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얼마간 쉬고 있자니 일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내게 어쩐 일이냐 했고 난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딸이 왔다. 저녁 먹고 가야 한다면서.
뒤늦게 온 아들과 함께 횟집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이 자주 이용하던 횟집인데 근래 4-5년간 오지 못했다. 아마 아들 졸업이후 처음인 듯싶다. 딸내미 졸업 땐 아들이 군대 가고 없었고 그나마 샤브샤브 집에서 점심 먹었으니까.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넷이서 함께 한 식사였다. 남편과 같은 생일이지만 형편이 형편인지라 올해는 가족이 식사하는 것으로 대신 하자고 했다.
식사하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조금 달리자니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서울권으로 접어들자 도로에 빗방울 내린 흔적조차 없다.
딸내미를 오금역에 내려주고 돌아올 때는 하남도 이미 활짝 개어 있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늘 근무를 했더라면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었을지. 엄마 밥 먹겠다고 먼 길 온 딸내미 생일 때도 제대로 못 챙겨 줬었는데...
어찌되었든 짧은 시간에 엄청난 많은 일들을 겪었으니 이 또한 나의 재산이겠지.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5월 3일
아침부터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잠깐 나가서 시재 해결 안 된 것 해결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오고 싶다고 해도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만류하더니 내가 올린 결재들 이제야 스캔 떠서 보낸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따로 메모해 둔 두 건은 빠져 있었다.
그러고선 정확한 거냐고 따져 묻는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인간적인 정이 마지막에 다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나는 비록 해고되었을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배울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었던 사표를 쓰지 않고 꾹꾹 눌러 참고 온 것인데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고 가겠다는 나를 한사코 말린다.
아마 그것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거리의 빌미를 마련하고자 함이겠지. 지금까지의 많은 사람들을 몰상식하고 이해불가의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연말 정산을 하다 보니 작년 회사를 거쳐 간 사람이 18명이나 되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만. 그것도 6개월을 넘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긴 4월에 자른 사람만 셋이다. 스스로 그만둔 사람이 둘이고.
그러니 다행일수도 있다는 얘기고 남아있는 사람도 언제 그만둘지 다들 갈등 속에 하루하루 산다.
5월 4일
간밤에 아들과 남편이 번갈아가며 드나드는 바람에 잠을 설쳤더니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살짝 예상보다 늦게 일어났다.
작년에 자리 많다고 방심했다가 기다리고 밀려서 늦게 도착한 걸 생각해서 오늘은 예매부터 하였다.
집 정리 하고 씻고 밥 먹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빠듯하여 저녁 준비도 못한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족에게 나의 출타를 알리지 않은 것은 일찍 돌아와 저녁 할 생각에서였다.
어쨌든 5분만 일찍 나섰어도 그리 걱정을 안 할 텐데 조바심이 나서 4분 후에 오는 112-1을 기다리지 못하고 112-5를 탔다.
중간에 갈아탈 심산이었다.
그만큼 마음이 조급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탈수 있겠고 어쩌면 눈앞에서 놓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얼마쯤 가자니 뒤차가 바짝 쫓아와서 바로 갈아탔다.
결국 시간 안에 도착하여 예매한 표를 발급받아 승강장으로 갔으나 7분 전인데도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3분 전에야 올라타게 했고 안도의 숨을 쉬며 내려갔다.
그렇게 2시간 반 만에 증평에 도착했고 내수로 갔다.
밖에서 효순일 만나 같이 학교로 갔다.
오늘은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1년 만에 그리운 얼굴들 만나 신명나는 체육대회를 즐기고 부상으로 우리 기수가 배구 2등을 하여 20만원을 받고 노래자랑에 백댄서로 나갔다 4kg쌀 1포대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마치고 저녁식사 할 때 15명이었다.
작년에 왔던 동창 중 안 온 동창도 서넛 되고 작년에 오지 않았던 동창도 서넛이다.
아무튼 지간에 즐거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빈혈 있는 나를 위하여 피조개를 사와서 먹여주었다.
'2013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으로 가는 길 (0) | 2013.07.11 |
---|---|
6월 4일 화요일 화창한 날 (0) | 2013.06.04 |
첫 출근 (0) | 2013.01.30 |
의미 있는 하루 (0) | 2013.01.28 |
2013년을 맞이하면서 (0) | 2013.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