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더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매년 문인협회에서 가는 문학기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전에 한 번 다녀온 곳이라지만 나는 초행인지라 기대가 자못 컸다.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떠서 손꼽아 기다렸던 날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산에서 직접 채취한 영지와 짝꿍이 직접 내린 꿀을 넣어 생강과 함께 식혜를 미리 만들어 냉동 보관했다 해동하고 전날 누룽지를 만들어 서둘러 갔다.
시청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착석하였고 하나 둘 버스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늘 그렇듯 한 명이 늦는 바람에 8시 40분에 출발하기는 하였으나 출발하면서 협회에서 준비한 김밥, 물, 과자봉지, 요구르트를 시작으로 남궁복실 선생님의 떡과 임영희 선생님의 감귤, 그리고 예쁘게 하트모양으로 손수 만들어온 정진애 선생님의 쌀과자 등이 계속 전달돼 먹거리가 푸짐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박순하 회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먹을거리가 많음에도 누룽지를 다같이 오도독거리며 구수함을 차 안 가득 풍기는 가운데 드디어 봉평 이효석문학관에 도착하였다.
이효석의 생애를 영상으로 관람하고 간략하나마 월례회 겸 세 분이 이효석의 시를 낭독하였다.
“해피700 평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를 맞이한 해설사의 멘트를 시작으로 평창 소개와 함께 영상으로 본 이효석의 생애를 사진설명과 함께 자세히 듣고 문학관을 관람하였다.
이효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듣고 관람하는 가운데 서울만 경성인줄 알았지 경성이 함경북도에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작품으로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메밀꽃 필 무렵』밖엔 몰랐는데 돈, 수탉, 산, 들 등과 구인회 등 의외로 많은 활동과 작품을 남겼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용이 눈에 그려지는 것이 묘사가 서정시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직접 보고 들으니 그의 유년시절 유학 100리길이 고스란히 소설 속에 스며들었음을 알았다.
시간상 짧은 관람과 사진 촬영을 마치고 고장의 별미 메밀 막국수를 먹어야 제 맛이지만 행여 영양이 부실할까 회장님의 배려로 점심은 막걸리를 곁들인 푸짐한 갈비탕이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허생원과 성처녀가 하룻밤을 보냈다는 물레방앗간에도 가서 인증샷도 찍고 건너편 한창 제철인 코스모스꽃밭에서 온갖 포즈도 취해보고 이미 지나버린 효석문화제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미 철지난 메밀꽃을 볼 수 없음에 벽화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효석 달빛언덕이었다.
다른 해설사와 함께 이동하며 설명을 들었다.
좀 전에 문학관에서 대부분 들은 이야기지만 실내를 벗어나 야외에서 이동하며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먼저 이효석의 생가를 복원한 곳에서 설명을 듣는 중에 다른 팀이 몰려와 푸른집으로 이동했다.
이효석이 함경도 경성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부인과 4남매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쳤던 담쟁이덩굴로 가득한 푸른집.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갖춘 현대식이 마치 청남대의 일부 축소판 같았다.
부인과 막내아들이 죽고 2년 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뜬 천재작가 이효석.
푸른 집 뒤로 소설 속 보름달이 튀어나온 양 연인의 달이 둥실 떠 있다. 이동하면서 근대문학관에 들어가 관람도 하고 사진도 찍고 트로이 목마에 오르듯 나귀 전망대도 올라가보고 나귀광장에서 나머지 해설을 들었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에서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보고 허생원과 부자인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있다.
이에 후배 작가들이 이효석에게 바치는 의미로『메밀꽃 질 무렵』을 이어 썼다고 한다.
허생원은 동이와 함께 제천으로 가서 늙은 성처녀와 해후하고 허생원은 아들인 동이에게 자신의 상권(장터에도 각자의 자리가 있음)을 넘겨주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으로 해설이 끝나고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몇 분 선생님과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언덕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찍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간 맞춰 버스로 돌아오니 아직 정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밖에 나가보니 한쪽에 자리 펴고 막걸리를 마시는가하면 가게에서 술을 마시거나 구경하거나 사진 찍거나 하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이동하였다.
도착하니 두 명의 해설사가 일찍부터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두 팀으로 나누어 갔다.
스무 명 남짓한 한 팀은 직진의 정문으로 향하고 예닐곱의 우리 팀은 좌측으로 나무로 된 경사로를 따라 자작나무 숲길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동이가 평상에 충주댁과 술상을 마주앉았고 대문을 들어서는 허생원과 조선달의 모습이 있고, 물레방앗간 안에 놀란 성처녀 앞에 서있는 허생원의 모습도 있고, 약간의 메밀밭도 보이고, 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잡아주는 모습도 있고, 끝으로 장터의 집들이 있고 그 앞에 제기차기 굴렁쇠 앉는 그네 등이 있다.
끝으로 다른 팀 입구가 된 출구에서 각자 인증사진을 찍고 합류하여 단체사진을 찍은 것으로 문학기행을 종료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방금 쪄낸 따끈따끈한 옥수수 하나씩 다들 물고 하모니카도 불고, 향기 솔솔 나는 구상나무 방향제도 하나씩 선물로 받고, 휴게소에선 저녁대신 따끈한 호두과자를 한 봉지씩 안겨주었다.
다른 곳에 비해 곳곳마다 입장료가 흠이긴 하지만 주제별 테마여행으로 참 좋았다.
문학기행을 위해 사전답사를 다녀와 알차게 준비한 운영진께 서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노고에 감사드린다.
또한 찬조해주신 많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다른 해에 비해 게스트가 많아 좋았지만 유난히 많은 회원 선생님들이 불참하여 서운하고 아쉬운 날이기도 하였다.
천재는 요절한다던가. 금수저로 태어나 풍족함을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단명한 그의 삶이 못내 안타까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3주전쯤 갔더라면 흐드러진 메밀꽃과 더불어 효석문화제도 참석할 수 있었으련만 내년엔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넉넉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아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