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면 가던 문학기행을 올해는 9월에 다녀왔다.
내가 관광회사에 입사하고 가는 여행이라 우리회사차로 가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단톡방에 오고가는 대화 속에 식혜를 만들어 간다 해놓고 막상 무지 바쁜 일상 속에 두 번에 걸쳐 만들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이 앞섰다.
늦지 않게 가려고 서둘려 출발하였지만 남들보다 거리가 있다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일단 식혜를 내려놓고 시청 안으로 들어갔으나 주차공간이 없어 가장 멀리 간데다 후방주차가 서툴다보니 내가 제일 늦은 셈이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오수봉 시장님과 몇몇 의원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정시에 출발하여 순탄하게 강릉으로 향했다.
이번엔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호자 선생님과 짝하여 가는 내내 즐거웠다.
출발하면서 사무국장과 회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전 회원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는데 그날 처음 보는 사람이 예닐곱이나 되었다.
김용수 선생님이 준비하신 따끈한 떡을 비롯하여 협회에서 준비한 각종 먹을 것 외에 각자 개인이 준비한 간식도 서로 나누며 갔다.
나 역시 식혜 만드느라 조금밖에 준비 못한 누룽지를 나누었더니 다들 좋아하였다.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강릉이 고향인 김남희 선생님이 강원도의 문학행사와 문인들의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신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흥겨운 가운데 먼저 도착한 곳은 김동명문학관이었다.
정갈하게 가꾼 문학관에 들어서니 정면에 태어나 8세까지 살았다는 생가인 초가집과 그 앞에 푯말이 있고 오른쪽 마당 한쪽에 파초가 있었다.
학생 때 지식으로 습득한 시 ‘파초’가 현장에서 보니 가슴으로 이해되는 듯했다.
그리고 대표 시 가운데 ‘내마음’ 가곡의 선율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초가 왼쪽으로 문학관이 있고 그곳을 둘러본 후 자칭 김동명의 네 번째 여자라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질문 왜 네 번째일까? 바쁜 관계로 사전검색 없이 간지라 짐작으로 어머니 아내 딸 그리고 해설사라고 답했다.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큰소리로 답한 대가로 김동명 대표시선집을 선물로 받았다.
김동명 시인은 여자 복이 많은 건지 없는 건지 세 번의 결혼을 하였다.
1남 1녀를 낳은 첫부인과 사별하고 2녀를 낳은 둘째부인도 사별하고 셋째부인과 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47년 혼자 월남하고 후에 둘째 부인이 월남할 적에 시인의 시를 명주에 적어 어린 아이 몸에 둘러서 가져오는 바람에 시집 ‘진주만’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 거기서 시낭송을 하였는데 대부분 김동명 시인의 시를 낭독하였지만 나는 낭송할 시를 준비하라 해서 예전처럼 부족하지만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시낭송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가 이호자 선생님과 사진을 찍으려는데 먼저 자리한 동호인들이 이호자 선생님을 모셔가고 나는 졸지에 사진사로 전락하였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보니 또 다른 한쪽에서 나를 불러 사진을 찍어 달랜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끼리끼리 그룹사진을 찍어주다보니 정작 나는 찍을 새 없이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래서 서둘러 나오는데 임영희 선생님이 같이 찍자며 셀카봉을 겨냥하는데 사자마자 들고 와서인지 조작이 서툴다보니 계속 폼만 잡다 버스에 올랐다.
이동하다가 그 동네 전체가 한과마을인지라 김남희 선생님의 안내로 필요한 몇 분이 한과를 샀고 협회에서 사서 돌린 것으로 좋아하는 한과를 맛보았다.
그리고 이동한 곳이 오죽헌이다.
시낭송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오죽헌에서의 시간은 30분밖에 할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볼 것 많고 둘러볼 것 많은 그 넓은 곳을 뛰어다니며 구경하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고 수학여행 이후 30여년 만에 들른 곳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초입에 ‘사임당 빛의 일기’기념물이 이색적이었다. 아마 드라마 영향으로 설치했으리라.
초당순두부로 맛난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허난설헌의 생가다.
8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을 만큼 신동이었던 그녀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과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김성립의 아내인 것이 불행이라고 할 만큼 천재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불운한 삶을 살다갔다.
같은 여자로서 또 같은 문인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사후에 동생 허균에 의해 ‘난설헌집’이 중국에서 출간되면서 천재성을 인정받고 시가 보존된 게 다행한 일이다.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과 나무가 우거진 집밖 그리고 박물관에서 해설을 영상으로 보느라 둘러보진 못했지만 경포호수가 바로 옆에 있으니 시심이 절로 나올듯하다.
공원엔 아버지 허엽, 이복오라버니 허성, 오라버니 허봉, 그리고 허난설헌, 동생 허균 등 허씨5문장 시비가 눈길을 이끈다.
문장가의 집안에서 문장가가 나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할머니뻘 되는 시대를 앞서 살다 간 신사임당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임당처럼 친정에서 살았던지 아님 아내를 이해해주는 남편을 만났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이동한 곳은 경포 바닷가였다.
바닷가로 이동하면서 마시는 시원한 식혜가 아주 꿀맛이었다.
바닷바람도 쐬고 백사장도 거닐면서 즐거운 추억도 만들고 느린 편지도 써보고 돌아온 아주 행복한 날이었다.
돌아오면서 정체구간 지루한 시간에 웃음보약 한 채 난센스퀴즈를 김님희 선생님이 내주셨는데 휩쓸다시피 대부분 내가 맞추었다.
안전하게 무사히 잘 다녀온 것과 사랑과 기쁨 듬뿍 나누며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 가득 담아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