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왔는데 지난번 왔던데 맞지?"
여자도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가고 있는 중인데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네. 맞아요. 나도 지금 가고 있어요"
남들은 이혼을 쉽게도 하드만 여자에게 이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런 이혼이 드디어 이 부부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공판 시간은 아직도 멀었건만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다
두사람도 접수를 마치고 대기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대기자들을 1호법정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거기서 간단히 주의사항을 준다
"판사 한분이 여러분을 다 판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니 단답형으로 예 아니오로만 간단히 대답해 주시고 판결문 가지고 시청이나 구청, 읍사무소에 가셔서 신고 하시면 됩니다
두 분중 헌분만 접수해도 되는데 이것저것 쓰고 싸인하는 것도 있으니 같이 가셔서 가족관계증명서 신청 창구에 접수하시면 됩니다"
남자와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부터 남자와 맞지 않는다는걸 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살아오면서 숱한 이혼의 위기를 넘겼다
서로가 그래도 이혼보다는 함께 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가까스로 지탱해온 결혼생활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의미했다
결국 잘못된 만남을 인정하며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이혼이건만 남들은 참 쉬워보였다
거기 모인 사람이 족히 100명은 넘어보였으니까
11시가 되자 한 명 두 명 호명하여 앞쪽 대기실에 따로 불렀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난 후 두 사람이 판사 앞에 나란히 앉았다
"○○○"
"예"
"□□□"
"네"
"두 사람은 진정 이혼을 원하십니까?"
"예" "네"
"두 사람에게 미성년자는 없습니까?"
"예" "네"
"두 사람이 이혼했음을 판결합니다"
이게 전부였다
안내에 따라 미리 작성된 판결문을 각자 받아들고 시청으로 가서 같이 신고하고 한장만 접수하였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던 이혼이 10초만에 끝나버렸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던 27년 10일만에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드라마에 보면 그래도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같이 밥이라도 먹던데 기분이 착잡하여 밥 먹자는 말도 못했다
대신 남자는 여자에게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신사임당을 쥐어주고 여자는 남자에게 잘 살라하고 제 길을 갔다
27년 전에 애인에게 배신 당하고 죽고싶은 마음에 여자는 바닷가를 찾았다
그때 남자가 여자를 말렸다
어차피 죽을거면 결혼이라도 해보고 죽자는 마음에 남자를 따라나섰다
처음만 해도 자신을 구해주고 지극히 아끼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같이 살다보니 여러가지로 자신과 맞지않아 많이 힘들었다
비록 물에 빠져 죽게된 여자를 구해 살게되기는 했지만 마흔이 다 되어 만나 살게된 여자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다시 만나고 싶은 여자였다
비록 남자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힘들긴 해도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그리고 중풍걸린 시어머니 모시고 정성을 다해 수발도 들었다
어머니가 중풍걸렸을 때 싫은 내색 없이 수발들고 아들 딸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위준 착한여자였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은 장성하고 여자도 사회적 위상이 올라갈수록 가정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 같구 갱년기 때문인지 우울증이 찾아온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해소하지 못하다보니 자꾸 술을 의지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가 알콜중독으로 앰블런스에 실려갈 때부터 6년간 십여차례 병원에 갈 때마다 그 수발을 다 들었다
살면서 고비고비 넘기면서 이혼얘기가 숱하게 오갔지만 그럴 때마다 무시하던 남자였는데 막상 나이먹고 병들고 나니 안됐기도 하려니와 미안한 마음에 이혼을 보류하였다
더는 아이들과 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헤어져 산지 3년 만에 이혼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가게도 차리고 잘 지내다 암에 걸렸다
여자는 남자와 이혼 후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온 좋은 사람 만나 새로 가정을 꾸렸다
남자는 암 때문에 다시 술에 의지하다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였다
여자가 그립고 절실했지만 이미 남이 되어버렸다
이럴줄 알았다면 있을 때 가족들에게 잘해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힘들게 했어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고마운 여자였는데 왜그리 모질게 했을까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