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인연

순례 2018. 5. 13. 00:00

중3무렵 같은 동네 여자친구로부터 처음으로 전달 받은 그녀의 편지
여학생에게 처음 받은 편지라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되었다
그래서 두 번인가 받은 후에 공부 핑계로 거절을 하였다
그 이후로 더이상 편지는 전달 받지 못했지만 여름방학 무렵 동네친구를 통해 만화 캐릭터 그림 한 권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동네로 놀러 갔는데 그녀도 그 곳으로 놀러와 합석한 적도 있었다
또 동네 친구네 놀러 왔다가 몇 번 어울린 적도 있었다
아무튼 모범생으로 알던 그녀가 왜 여기저기 놀러다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인문계 진학하고 나는 가정형편상 실업계를 갈 수밖에 없어 그무렵 술과 담배를 즐겨했다
그렇게 다른 길로 진학을 하고 버스 통학 하는데 보일둣 말듯 그녀는 늘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다

고3 2학기 때 실습을 나가느라 머나먼 타지로 가게 되면서 그녀는 잊혀졌다
그리고 몇 년 지나면서 객지에서 외롭다보니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직원들과 야외로 놀러갔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여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길을 가다 뒤돌아보니 그녀도 저만치 가다 뒤돌아 보는데 순간 그녀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가던길 멈추고 다시 뒤돌아보니 그녀 역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머나먼 타지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참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이대로 가버리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려가는 길목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1시간 이상 기다릴 생각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1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그녀가 나타났다
내가 그녀를 알아보았듯 그녀 역시 나를 담박에 알아본 것이다
그 해 그녀를 우연히 만나 서로 아는 사이임을 확인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만났는데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그녀가 고백하였다
하지만 내가 사귀는 여자친구 있다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생 때도 공부는 핑계였고 사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때도 그녀보다는 여자친구가 더 좋은게 사실이었다
동창으로서 더구나 아는 사람으로서 객지에서 만난 반가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는 달랐다
그녀가 고백한 것처럼 나를 좋아해서 그런지 평상시는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탄무렵이면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왔고 생일 때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잊을만하면 변함없이 연락을 하던 그녀에게 타지방으로 발령받아 간다는 말을 안 했더니 그해도 카드를 보냈나보다
물론 나는 받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것도 그 해 뿐
그 다음 해엔 어떻게 알았는지 새로 발령난 지방으로 카드를 보내와서 받게 되었다

나는 늘 오는 전화만 받다가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연락을 하였고 그 후에도 몇 번 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아주 힘들 때 그녀가 생각났다
한동안 연락없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다
만일 그때 연락이 되었다면 난 그녀에게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바람에 난 그녀에게 가고자 한 마음을 접어야했다

그뒤로 그녀에게 더이상의 연락이 없다
그제야 난 비로소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잊을만하면 항상 먼저 연락을 해오던 그녀라 난 그녀에 대해 소홀했나보다
그녀와 연락이 끊긴지 10여년이 흘렀다
어느날 중학교 카페에 들어가보니 그녀가 가입을 하였다
반가움에 연락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녀를 찾는 친구의 전화번호가 있어 염치불구하고 전화를 걸어 그녀와 연럭이 되면 나에게도 알려달라고 생면부지 초면에 부탁을 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연락이 안 된 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메일을 정리하는데 그녀의 메일이 보였다
내가 그녀 친구에게 전화하기 며칠 전에 보내온 것이었다
스팸인줄 알고 버리려 했던 메일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나인줄 금방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내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그날 약속을 잡았다
그당시 그녀 역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겨서인지 아니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녀 마음 때문인지 반가움이 배가 되었다
그 후로 가끔 연락이 오갔다
내가 먼저 연락 해야지 하다보면 언제나 그녀가 나보다 한발짝 앞서 연락을 해온다

그러다 어느 핸가 핸드폰이 망가져 연락처가 모두 날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다행히 그녀의 명함을 고이 간직한터라 연락처를 다시 저장할 수 있었다
술을 마실 줄도 모르면서 가끔 술 마시자 전화 올 때면 아마 그녀도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난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또 가끔 내게서 마음이 멀어진다고 할 때도 다가가지 못했다
나역시 힘든 상황이라 그런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의 생일에 축하인사를 했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그런데 어느 해는 심드렁하며 약간 화가 난듯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으면서 또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녀를 힘들게 하였는지 한동안 연락이 없다

그래도 난 안다
그녀의 마음이 쉽게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는걸
그래서 내 상황이 완전히 좋아지면 그녀가 날 밀어낸다 해도 내가 다가갈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는 그 누구보다 가장먼저 그녀에게 생일축하 인사를 하고 싶었다
밤잠까지 설치며 이른 새벽에 눈뜨자마자 축하인사를 하였다
뒤늦게 답장이 왔지만 첫인사 고맙단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있어 힘이 되었다
조만간 좋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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