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이야기

알 수 없는 일

순례 2013. 6. 2. 23:30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직장의 복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 모든 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고졸의 학력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아이들만 키우던 나로선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책 세일즈도 하고 보험 설계도 하고 무엇보다 남편 따라다니며 현장 노동도 많이 하였다.

그러다 독학사를 마치고보니 용기가 생겼다. 비록 나이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다행히 가구회사에 면접을 보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기로 되어있었다.

그 얘길 남편에게 하였더니 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유는 남자들뿐인 곳에 여자는 달랑 나 혼자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찾은 곳이 생산 쪽이었다.

그곳이야말로 관리자 빼곤 모두가 여자들(아줌마) 이었으니까.

기를 쓰고 직장을 구한 이유는 더 이상 남편 따라 험한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노동 현장에 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아줌마들과 어울려 일을 하였다. 다행히 집이 바로 코앞이라 도시락을 싸는 대신 집에서 먹고 다녔다.

한동안은 그 곳에서 잘 지냈으나 아줌마들의 뻔한 이야기와 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의견충돌로 인해 작은 다툼이 일어났고 더 이상 수준이 안 맞아 7개월 만에 그곳을 그만두었다.

그때에 남편이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거였다. 그래서 사무직에 도전하게 되었다.

 

나는 이력서를 여러 군데 내고 면접을 보면서 좌절도 많이 겪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여덟이었고(곧 있으면 39) 광고의 대부분은 35세 이하 또는 29세 이하가 대부분이어서 실제로 면접 보면서 거절도 많이 당하였다.

더구나 그 당시는 결혼 전 유치원 용품의 경리와 교보생명 생활설계사, 전자부품 조립의 생산이 내 이력의 전부였다. 더욱이 엑셀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지원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드 좀 치고 컴퓨터를 할 줄 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감으로 밀고 나갔다.

대부분 나이 어린 미혼을 좋아하지만 반드시 어느 한군데쯤은 그래도 나이든 사람을 오히려 좋아하는 데가 있을 거라고 확신 하면서 뽑아만 주면 정말 열심히 잘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있었다. 허울 좋은 이름뿐이라도 주임자리를 주면 좋겠고 기본급이 80정도만 돼도 좋겠다고. 생산 쪽에선 60조금 넘고 야근을 많이 해야 70이 겨우 넘을둥 말둥 했고 생산라인에선 직책이 있는 사람은 주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드디어 면접 보았던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생산 업체에서 그만둔 지 열흘 만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구인광고를 낸지 몇 달 되었으나 미혼을 구하려다보니 여의치 않아 기혼으로 바꾸고도 여러 가지 여건과 사정으로 인해 쉽게 구하지 못한 채 그 기회가 나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 바람대로 주임에 기본급 80으로.

처음 시작은 80이었으나 식대 명목 또는 직급수당 또는 업무수당 명목으로 급여가 꽤 빠른 속도로 인상되었다.

그리고 내가 입사한 건 12월 초순이고 월말이 곧 연말이다 보니 연말에 특별 보너스를 받고 다음 달 10일이 되어 첫 급여를 받고, 말쯤에 설날이라 또 보너스 받고, 2월 10일에 두 번째 급여를 받는 등 정말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그 곳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입사 후 1주일쯤 지나자 창원에 있는 본사에 출장을 가서 사장님 면접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신원 보증도 서야했고.

그런데 사장님을 만나 면접 시 보증 이야기를 하니 내 얼굴 보시고 됐다고 하셨다.

그것이 고마워 정말 열심히 일하려 하는데 그곳에선 대부분의 업무가 엑셀로 진행하고 있었다. 엑셀의 ㅇ자도 모르던 난 소장으로부터 기본적인 것은 배워 날마다 메일로 본사에 보고를 올리지만 양이 많아져서 줄을 추가한다든지 한 장으로 압축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것을 모르던 때라 조금만 달라지면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하나씩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늘어갔고 엑셀도 익힐 겸 밀렸던 일들도 찾아서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실력도 늘고 급여도 올라갔다.

그렇게 2~3년 잘 지냈는데 사무실이 너무 먼 곳으로 이사 갔다. 환승도 안 되던 시절 광주까지 두 번 갈아타고 30분은 족히 걸어 다녀야 했다. 그래도 몇 달 힘들게 다니다 갑작스레 피치 못할 개인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 둘 때 퇴직금 외에 전별금도 받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주었다.

당분간 일할 수 없는 처지라 그만두고 집에서 쉬다가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6개월 과정 중 두 달 만에 전산세무회계 1급 자격증을 따고 4개월 만에 취업을 하였다.

그때 함께 수강하던 20대 아가씨들이 법인 업무 볼 사람을 구하는 자리에 지원하겠다니까 말렸지만 나는 또 배짱 지원하였다.

그래서 학원에서 배운 더존을 바로 실습할 기회도 갖고 또 다른 실력을 키울 기회도 되었다.

그 곳에선 여러 해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무튼 그 두 번째에서도 그만두었을 때 나중을 위하여 쇼핑몰 창업과정을 배워두었다.

그 뒤로 한군데 더 직장 생활을 하고 사정상 직장을 구하다 다시 옛날에 다녔던 교보생명에 입사하였다.

하지만 가정이 처한 형편과 처지 때문에 재무 설계사로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였다.

그 때도 같은 시급이라도 사무실 경리 업무를 보는 일이었다.

6개월 후 회사 사정으로 정직원을 채용하면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 또한 내겐 안정된 일자리였다. 하지만 시급이라 손에 들어오는 건 너무 적다보니 100만원이라도 월급으로 주는 곳이 있었음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 취직을 하였는데 10시~5시까지 130에 4대 보험료는 회사에서 내주는 곳이었다. 그것도 투잡의 용인 하에.

그렇게 직장을 참으로 잘 잘 인도해 주셨다. 내가 필요할 때 가장 좋은 곳으로.

그런데 이젠 투잡보다 급여가 많다면 보험 쪽은 손을 떼고 싶었다. 나는 아무래도 영업 쪽으론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12월에 이력서를 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직업이든 아르바이트든 정말 제때에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 이었는데 이번엔 좀처럼 감감 무소식이다. 그래서 생각했던 톨게이트 모금 자원봉사에 전념하였다. 아마 이 봉사가 끝나면 되겠지 하는 바람으로 봉사 기간이 끝나갈 무렵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역시 연락은 없다. 그리고 그사이 봉사도 끝났다. 끝나고도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다. 그중에 정말 꼭 마음에 담아둔 회사가 있었다. 급여도 위치도 일도 딱 이었다. 신기하게도 딱 점찍어둔 그 회사에서 면접제의를 받았다.

면접을 보고 이틀 뒤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이력서 낼 때 공고에 나왔던 것보다 500이 많았고 과장 직함으로.

그래서 생각했던 것처럼 보험은 접기로 하고 회사 업무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일이 만만치 않았다. 날마다 야근에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그렇게 일을 해도 여전히 따라잡기 어렵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겨우 버티나 싶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자리도 잡고 인정도 받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해고를 당하였다. 이유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 말에 수긍을 하므로 인정하고 그러기로 하였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장이 원하는 기대치를 채워줄 수 없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만두고 바로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 실패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곧 일자리를 구한다음 말하려 했다. 그런데 일하러 갔던 남편이 일도 못하고 일찍 오는 바람에 들통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다.

그래서 보름 만에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 급여는 전에 회사에서 수습기간에 받던 금액보다 적었지만 가장 가까운 곳이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서 교통비가 안 들어가므로 두 번의 면접(실무자, 사장) 끝에 다니게 된 곳이었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별 탈 없이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느닷없이 면담을 요청하더니 자기네 회사와 안 맞을 것 같다며 그만두라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이유나 알자고 했지만 미안하다고 더 좋은 자리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소리만 하였다. 그래서 알았다고 그만 두었다.

이번에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일 나간 남편이 일도 못하고 일찍 오는 바람에 또다시 나의 실직을 알게 되었다.

주말에라도 면접을 보고 일자리가 구해서 다른 직장에라도 가지길 바랬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건 지난번과 이번에 왜 이런 일이 있는가 하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도 6개월 7개월 했는데 정규직을 한 군데선 3개월 만에 한 군데선 열흘 만에 그만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더구나 지난번은 어쨌든 해볼 만큼 해봤기 때문에 미련도 없지만 다니는 동안 주일 오후예배도 제대로 못 드려서 그만두게 하셨나 하는 위안도 받았다.

그런데 이곳에선 이렇다 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적응도 하기 전인 열흘 만에 해고당한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적어도 수습기간이라도 지나야 하는 게 아니가? 그러자고 수습기간이 있는 건데.

그 사람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님의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실력을 키워야 할 때는 그런 곳으로 인도하여 많은 실력을 쌓게 했고 단순히 수입이 필요할 때는 또 그런 자리로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일하게 하셨다.

이 앞의 회사에서 모진 고생을 하기는 했으나 내가 원했던 건 일이 많고 여러 가지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실력을 쌓을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이 죽도록 일만하다 쫓겨났으니 그렇잖아도 나이 많아 불러주는 곳도 점점 사라지는데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벌어지고 보니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일자리를 구하기보다 이젠 직접 내 일을 시작할 때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다면 조금 더 경험을 거친 후 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사실 조금 막막하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이력서를 내면서 아무데서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일을 시작하리라 생각은 했다. 그런데 어제 연락이 와서(신기하게도 매번 내가 꼭 갔으면 하는 곳에서 연락이 온다) 면접을 보았다.

내일 한명 더 면접보고 결정 한다 했다. 만일 그 곳에서 나를 불러주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없다면 더 이상 미련두지 않고 일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오라고 하면 막상 갈등이 생긴다. 왜냐면 업무 수행은 여러 가지 일이라 다행이지만(단순한건 배울게 없어 싫다) 급여가 며칠 만에 그만둔 회사보다도 적다. 거기다 교통비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어찌 될지는 내일 저녁이면 결정이 날 것이다.

 

남편은 한군데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쫓겨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청구도 하지만 난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장생활을 함에 있어 물론 한 군데서 오래하면 인정도 받고 안정도 되고 연봉도 오르고 좋을 일이지만 여러군데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걸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내게 그런 기회를 주신거라고 생각하고 취업이 될 때마다 항상 감사했다. 항상 내게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편한 맘으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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