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야기

아~베르테르여!

순례 2012. 7. 23. 23:02

8월 9일

휴가의 끝

어제 명미가 왔다. 2시가 못 되어서인가 보육사로 전화가 왔다. 고속터미널이라고. 가르쳐주고 찾아오라고 했다. 잘 찾아왔고 점심 먹고 얼마 후 함께 퇴근했다.

돝섬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었는데 명민 배를 타는 것으로도 바다를 보는 것으로도 무척 즐거워했다. 바다 냄새마저 좋아할 수가 없었다.

동물원, 놀이장,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다녔는데 나나 명미나 카메라 없음에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8시가 좀 못되어 나와서 양산박으로 갔다. 마침 영기가 있었고 또한 현균 선배도 있었다.

명미와 식사를 할 즈음엔 계순이도 왔다.

식사를 마치고나와 둘째 언니에게 전화해도 안 받길래 현아네 했다. 아무도 없다는 말에 집으로 했더니 셋째 언니가 받았다. 오 구세주여! 그렇게 전화해도 안 받더니.

집에 오니 가족이 총동원되어있었다. 오빠, 언니, 애들에 은아, 언니까지.

명미가 정신없어했다.

언니들과 함께 둘째 언니네서 지냈다. 형부는 휴가 중이란다.

아침에 셋째언닌 어디 간다며 일찌감치 사라지고 나와 명민 언니의 지시를 받아 부곡 하와이 가서 온천도 즐기고 여러 놀이도 즐기고 식물원도 구경했지만 시간이 안 맞아 쇼는 관람하지 못했다.

잠시 가든에 들렸다 내려왔다. 명민 또다시 피곤한 여행길에 오르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8월 10일

여름이면...

해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8월 2일

81년 8월 2일엔 현철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지금도 정말 깨끗하고 순수했던 지난날들의 감정들이 아쉽기만 하고 현이로부터 날 지켜줌을 고맙게 생각한다.

84년 8월 2일은 K가 날 만나기 위해 창원으로 내려온 날이다. 그날 돝섬에서의 하루는 정말 유쾌했고 아쉬운 작별을 나누어야 했다.

85년 8월 2일은 대한고무에 근무하던 옥기사와 만나 가포 유원지에서 보트놀이 한 날이다.

그리고 87년 8월 2일은 심군과 함께 한 날이기도 하다.

지루하고 힘들었던 하루. 그래서 난 그와 헤어지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로인해 휴가를 불쾌하게 끝내고 돌아와 휴가 후유증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오늘에야 겨우 절교 편지를 보냈다.

그래. 이젠 그만이야. 다만 함께 보낸 날이 8월 2일이라는 게 유감일 뿐이다.

여행 중에 만났던 현과의 우정도, 풋내기 숙녀가 함께 나눈 K와의 사랑도,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잠시 즐긴 휴식도 모두 아름답건만....

 

8월 18일

베르테르의 고독

중3 겨울방학 때였나 보다.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읽었다.

한창 사춘기 때라서 그랬는지 내 가슴에 금방 와 닿았다.

베르테르가 괴테의 젊었을 적 분신이라는 말이 있듯 아마 그랬을 게다.

내가 가장 심하게 베르테르의 슬픔에 빠져든 때는 고1때였던 것 같다.

중 1때 조회 시간에 얼핏 보았던 어떤 남학생. 그해 늦은 가을 주번모임에서 그가 안영민이란걸 알았고 어린 그때부터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2학년 말에 짝꿍이 된 순희로 인해 알게 된 민이였지만 말 한번 해보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애태웠던가.

그를 한번이라도 보려고 등·하교시 시간 맞춰 차를 타며 그때만큼 나의 마음이 간절했던 적은 없었으리라.

이젠 민이 대신 K로 인해 가슴을 태운다.

수많은 밤 수많은 시간들을 가슴 졸이며 행여 나에게로 마음이 향해오지 않을까 기다린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이젠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영섭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내가 결혼하게 될는지 어떨런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평생 따라다니며 기억될 사람이 세 사람일 것 같다.

비록 풋사랑이었을망정 처음 사랑하게 된 짝사랑 민. 그리고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지만 날 아프게 한 K. 가장 힘들 때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 영섭.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8월 26일

그리움의 연가

간밤에 K 꿈을 꾸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고 간절히 생각할 때에도 나타나지 않던 그였는데 웬일일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꿈에서나마 그 앨 보았다는 것 또 날 반겨주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쁜 일이지마는 어느 한편으론 그 애가 걱정된다.

K!

어째서 난 너의 여지가 될 수 없을까.

너의 나에 대한 감정이 예전처럼만 되돌아온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너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제발 날 붙들어주지 않으련? 너무 지치고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아.

그 옛날엔 영섭이가 있어 날 잡아주었지만 그리고 네가 있다는 안도감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쓰러지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아.

너도 떠나버린 지금 영섭이마저 떠나보내고 누구한테 의지하지도 의지할 수도 없는...

 

8월 27일

7시쯤 되어서 Y에 도착해보니 한 사람밖에 없었다.

조금 있다 보니 언니가 왔다.

어제 낮에 거제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단다.

 

8월 28일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제목만 덩그러니 써 놓았다.

일기는 주로 밤에 잠자기 전에 쓰는데 아마 계속되는 TV시청으로 인해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오빠나 언니가 저번처럼 연루되어 못 썼던지 아무튼 기록이 없으니 생각이 퇴색되어 버렸다, 세월 속에.

 

8월 29일

오대양 속에서

용인 오대양 공장의 집단 변사체 32구의 이야기. 자살이냐, 타살이냐, 연신 특집으로 나오는 충격적인 사간에 몰입해 제목만 써 놓고 내용이 채워지지 않았다.

 

8월 30일

사랑이여 이젠 안녕

예배 마친 후 청년회 모임이 있었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인원이 많기에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점심 후 2시 반쯤 되어서 모두들 저 갈 데로 갔다.

나 역시 언니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터미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시간은 2시 50분 저번처럼 미리 올지도 몰라 미리 갔건만 허사였다.

3시 10분쯤 되어 심군이 왔다.

가포로 갔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급기야는 줄기찬 소낙비로 바뀌었고 앞을 분간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가포에 내렸을 땐 가늘더니 멈추었다. 조금 걷다가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 잔을 들으며 얘길 나누었다.

편지로 헤어지자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어쩐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만났다.

얘길 하고나니 후련하다.

7시가 넘어 자릴 떴다.

조금 걸으려니 또다시 비가 쏟아져 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왔다.

그를 바로 보내고 돌아오려 했으나 내 뜻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자꾸 시간만 끌려하고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해대어서 빗속을 가거나 말거나 내팽개친 채 먼저 돌아와 버렸다.

이젠 사람을 만난다는 것조차 두렵다.

나의 사랑은 여기에서 막을 내려야 할까보다.

 

8월 31일

사랑이여 마이너여

나의 최대 단점은 우유부단이다.

그로인해서 맺고 끊음을 잘 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상처 받기도 하고 상처 주기도 했다.

그저 사람 좋음이 사랑인줄 착각하고, 나 좋다고 목매는데도 나를 질리게 한다고 매몰차게 돌아서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 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음에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젠 사랑도 동정도 헷갈리는 그런 일은 그만두기로 하자.